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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장, 에코-다잉의 세계
변우혁 지음 / 도솔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10년 가까이 신던 신발을 버린다. 오래 신어서 서운할 듯하지만 아주 기쁜 마음으로 버린다. 구질구질해서가 아니다. 아쉬울 것 없이 '탈대로 다 타시오오~'한 듯 충분히 제 몫을 다 하고 내 곁을 떠나는 그 신발은 경건하고 고맙다. 13년째 타고 있는 자동차도 한 3년쯤 더 타고 보낼 생각인데 너무나 정든 저 작은 차의 몸체에 오를 때마다 잘 길들여졌고 정든 네 녀석 나와 헤어질 때 눈물보다 감사함으로 보내리라 하고 인사를 나눈다. 정말 제대로 제 삶을 살다 가는 것들은 아쉬움보다 감사함이 남는다. 이것이 깨끗한 이별이고 소진이리라.
나도 그리 살고 싶다. 저 낡은 구두처럼 제 몫을 다하여 남는 슬픔없이 남기는 슬픔없이 가고 싶다.
오래 전, 남편과 나는 화장과 장기기증을 결심하고 서약하였다.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행여 운전 중으로나 언제라도 불의하게 가더라도 장기를 기증하고 갈 수 있도록 다른 가족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한다.
딸아이가 다섯 살 즈음, "엄마, 100살까지 산다고 약속해" 하고 울먹이며 강요한 적이 있다. 사람이 누구나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 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우린 그날,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100살까지 살고 엄마 죽으면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가 돼. 내가 매일 물 주고 잘 보살펴 줄게" 그게 딸아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구나. 신문인가 어딘가에서 수목장 이야기를 읽으며 딸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웃었다. 우린 나무로 돌아가면 된다. 느티나무 좋겠다. 자작나무도 좋다. 그냥 산천이어도 좋고 조촐한 절 같은 데도 좋다. 이렇게 좋은 생각을 책으로 엮어놓으니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고 여럿이 약속을 한 후에 느끼는 든든함. 아름다운 생각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으리라는 안심.
사실 뒤로 가면 전문적이고 교과서적이기까지 한 내용이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내용으로는 책 한 권 분량이 안 된다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 생각을 정리해준 고마운 책이다. 앞부분을 읽을 땐 많이 울면서 읽기까지 했다(오해 마시라. 그런 감성적인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지적이고 참 쿨~하다).
돌아갈 데를 마련해 놓은 마음은 좀 여유롭다는 것을 깨닫기엔 내 나이가 너무 젊나? 그래도 어르신들이 정정하고 건강한데도 묏자리 마련해 놓고 행복해 하던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우린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대화 중에도 나무와 함께 할 훗날을 들려준다. 언젠가 저희들 부모가 돌아가면 나무로 돌아갈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