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도 서른 댓 명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모두 공부 잘하고 싶고 대학 잘 가고 성공하고 싶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공부나 능력이 아니다. 먼저 갈고 닦아야 할 것은 마음이고 인격이다. 특히 너희들 중, 공부 좀 하고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녀석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열심히 공부해 성공할 생각을 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에 감사하고 마음과 인격을 갈고 닦아라. 너희가 마음을 바르게 키우지 못하고 공부만 잘한다면 오히려 사회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공부만 잘하고 인간성 별로인 녀석들, 더이상 공부 열심히 하지 마라. 어쩌면 차라리 그게 세상에 기여하는 거다. ."

너무 독설적으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이었다. 교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아이는 문제아나 꼴찌가 아니다. 공부 좀 한다고 집에 돈좀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선생님들에게 무례하고 못난 친구들 무시하는 학생이다. 그런 아이들이 커서 부모의 영향으로 공부깨나 하고 세상에 나가 행세하고 살 것을 상상하면 세상이 싫어지기도 한다.

교사들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도될 때마다 누리꾼들은 예비교사들 인격교육 먼저 시켜라, 검증 받은 자만 교단에 서게 하라고 목소리 높인다. 맞다. 통감한다. 그렇게 세상이 교사들을 질타하는 것은 그만큼 교사라는 자리가 영향력이 있고 중요하다는 뜻도 된다.  교사뿐인가. 국회의원은 둘째치고 판사고 의사고, 교사들보다 더한 존경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은 어떠한가. 아무도 붙여주지 않은 이름의 '사회지도층'인 그들, 집안이 좋았건 머리가 좋았건 타고난 능력이건(극소수는 지독한 노력만으로도 그리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기득권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다른 이들이 갖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가졌기에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그들은 과연 올바른 의식과 인격을 먼저 검증받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묻고 싶다.

인격이 무엇인가.  예의범절이나 매너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고 나 아닌 사람도 다 귀한 존재임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인격의 바탕이 아닌가.

이 책의 이야기들은 경력있는 의사라면 누구라도 들려줄 수 있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수많은 에피소들들의 모음일 수도 있었던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그 사건들, 그 환자들, 그 가족들을 바라보는 눈이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의사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권위가 가득하고 말을 아끼며 어려운 용어로 '내 병'에 대한 나의 알권리를 차단해 버리는, 그보다 더 심하게는 우리의 무지를 이용하여 오진하고 진료를 남용하고 방기하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수많은 의사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의 치명적 질병이 그들에게 실험과 학습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그런 세상의 의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은이가 의사로 살아가면서 마음의 고통을 많이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했다. 이렇게 책을 쓸 수밖에 없는 그의 감성이 아마 의사로 살아가는 데 거추장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아픈 환자의 내력마다 가슴이 아렸던 그에게 외과의사의 길은 고난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작가의 훈김이 흔히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드였을지도 모를 이야기들 하나하나에 눈물을 찍게 만든다. 지은이의 글솜씨가 남다르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의 따뜻한 마음과 시적 정서가 이야기들은 살아 숨쉬게 만들었을 것이다.

세상 의사들 다 차갑고 권위적이라고 싸잡아 '다 나쁜 놈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단 한 명의 의인만으로도 살아날 수 있었다. 세상이 '선생은 다 나쁜 년놈들'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보이지 않는 교사들도 많이 있다고 항변하고 싶은 내 마음처럼 박경철 씨는 이 책으로 소리없이, 이 땅의 많은 의사들이 뜨거운 마음으로 환자를 지금도 만나고 있음을, 환자 앞에서는 냉철할지 모르나 돌아서 눈물을 훔치고 가슴아파 하며 그 마음을 돋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