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G. 융 무의식 분석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총서 3
C.G.융 지음, 설영환 옮김 / 선영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무의식에 관한 융의 저작이다. 물리학까지 동원되는 융의 박학다식함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건만, 어색한 번역 때문에 책의 진가를 한국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떤 인간이 어떤 것에서 이뤄지고 있는가를 알기만 해서는 그 인간을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문제라면 그 인간을 산 인간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성취한 바로 인간을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싶다. 융은 프로이트처럼 과거의 원인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로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이는 아들러와 융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야말로 애초 문명인의 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신경증 환자에 대해서는 신경증은 자기 자신과의 불화나 알력이다. 의식은 도덕적 이상에 따르려고 하는데 의식은 비도덕적 이상을 지향하여 행동하려 한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신경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거꾸로 비도덕적인 사람이 신경증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은 도덕 자체가 억압되어 있다.’

 

사례 중에서 사업 후 휴식을 즐기고자 했으나 우울증에 빠진 남자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성공적인 사업 수행에서 벗어나 퇴직 후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어 했지만 막상 퇴직한 후에는 그러지 못했다. 다시 일로 복귀해 보았지만 일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는 그렇게 멋지게 전환되지 않았다. ‘예전에 조직을 이끌었던 것처럼 그의 데몬은 그를 파멸로 이끄는 속임수를 감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일이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교훈도 얻을 수 있고 한편으로 에너지가 강한 사람은 그 에너지의 방향을 어떻게 잡는지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도 필요하다. 그런 열망의 에너지는 좋은 관계를 만나면 긍정적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남을 해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대립과 긴장이 없는 곳에 에너지는 없다. 그런 고로 의식의 입장에서 그 대립물이 발견되어야 한다.

사랑의 대립물은 권력에의 의지이다.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 권력의지는 없으며, 권력이 판치고 있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그늘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인간관계의 불화는 자기 자신과의 불화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무의식은 억압한다면 그 배후에서 습격할 것이다.’ ‘억압을 제거하면 의식의 여러 내용들이 무의식 속에 가라앉는 것을 막게 되고, 그럼으로써 무의식의 생산활동이 멈추게 되리라.’ 무의식을 두려워하고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님을 융은 제안한다. 무의식의 긍정적 측면을 아니마와 아니무스로 설명하기도 한다.

 

무의식이란 마음 중 의식되지 않는 것들의 존재- 의식 영역의 바닥 밑에 체류하여 의식에 의해 지각되지 않은 채 형성되어 잠재의식적으로 흡수된다. 이것은 직관이나 사색으로 인지되기도 하고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무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직관을 열어놓아야 한다.

무의식이라는 게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존재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일도 발생한다.

 

니체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 1835(<짜라~>를 쓰기 전)에 발행된 선원의 수기 중 일부를 쓴다. 이는 표절의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읽은 것을 무의식에 묻어두었다가 꺼낸 듯하다.(어렸을 때 들은 농부의 노래를 나이든 작곡가가 자신의 교향곡 악장에 테마곡으로 쓰는 경우가 있음).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도종환 시에 흠뻑 빠져 있을 때 도종환 풍의 시를 쓰곤 했다. 의도하지 않은 표절이 예술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은 오래 인간의 역사 속에 공유된 원형들, 그리고 동시성(이것도 융의 개념이다), 인간 사고의 유사성과 더불어 무의식적 습득으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닮음에서 기인하는 바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무의식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융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의식이란 게 그야말로 100% 의식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완벽한 의식은 불가능하며 인간은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문, 훌륭한 품성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뒷부분의 에 관한 부분이다. 번역을 다른 이가 한 것인지, 융의 문체가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문장도 보다 명료해진다. 융은 꿈을 하나의 사실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꿈은 의미를 지니며 꿈은 무의식의 고유한 표현 중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인과적이고 목적적이라고 본다. 프로이트와 달리 현재적이고 미래적인, 그리고 긍정적이며 보완적인 의미로 꿈을 바라본다.

 

융은 꿈의 장면들은 의식적인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고도로 객관적인 소산이라고 말한다. 꿈은 의식의 저변을 흐르지만 확정적이고 명확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꿈은 도덕적으로 잘 행동하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가령 완벽한 신사가 추저분한 여자 꿈을 꾼다면 외적인 완벽한 자신의 모습의 허구성을 보상하기 위해 의식을 평형을 이루려는 무의식의 시도일 수 있다. 꿈의 상징은 인간의 마음의 본능적 부분에서 합리적 부분으로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전달자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꿈과 꿈꾼 이를 분리할 수 없고 이미 정해진 꿈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각 인간마다의 맥락을 봐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동양식 꿈 해몽이 다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융 식으로 말하자면 문화적 축적으로 이룬 원형이 공통적인 꿈 해석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의 맥락이지 매뉴얼화한 해몽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꿈에 대통령을 만났다의 한국식 해석은 대길이지만 융은 열등감이 강한 사람이 꿈에서 위대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거나 완벽한 척 젠 체하는 신사가 현실에서 경멸하는 추저분한 여인꿈을 꾸며 자신의 무의식을 만난다고 해석한다.

 

같은 꿈이 반복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한다. 무의식이 지속적으로 보내는 신호일 것이다. 꿈은 꿈꾸는 이의 생활태도에서 부족한 것을 보상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고 장래를 예측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꿈은 정신적 균형을 잡아주기도 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날아가거나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기도 한단다. 오만에 대한 무의식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꿈 중에서 꿈꾼 이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인출해낼 수 없는 요소가 종종 있다. 이를 융은 원형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 같다. 우리 몸에 진화의 흔적이 있듯이 옛날의 심리가 우리들 심리 속에 있다는 것이다.

 

융은 많은 신앙인들은 심리학을 두려워해 원형적인 마음의 힘과 상징을 외면했다.’면서 일찍이 정신이었던 것들이 오늘날 지능과 동일시되어 만물의 어버이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고 의미 있는 주장을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의 원형 손실은 꿈의 상징으로 보상된다.

 

 

무의식은 단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식이 되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적 내용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전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모든 것, 언젠가 의식했지만 이제는 망각된 모든 것, 나의 감각에 의해 인지되었지만 의식이 유념하지 않은 모든 것, 내가 의도 없이, 주의하지 않고, 다시 말해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하고자 하고 행하는 모든 것, 내 안에 준비되어 있어 나중에야 비로소 의식에 나타나게 될 모든 미래의 것...

 

이 무의식이 순전히 개인의 것이든 원형에 근거한 집단 무의식이든,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융은 강조한다. 인간 안에는 의식으로 알 수 없는 신비한 영역이 분명 있다.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공부하는 학문이 아마 심리학일 것이다. 그 근원을 거대한 영적 존재로 보는 이들은 종교를 선택할 것이고 인간 보편성에서 신비를 풀어보려는 이들은 문학과 예술을 선택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무의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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