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 생태계
이혁규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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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혁규 교수를 좋아한다. 중등 교사였다가 연구자가 된 분인데, 많은 교사출신 연구자들이 자신이 서 있던 초증등교에 넌더리를 내고 떠난 후에는 높은 자리에서 학교를 내려다 보거나 외면하는 데 비해 이혁규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학교 현장에서 느꼈던 가장 큰 아쉬움 - ‘수업에 중점을 두지 않는-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변함없이 노력한다. 교사 출신 연구자의 가장 큰 강점이 무엇일까? 현장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진정 이 땅의 초중등 교육에서 걸림돌이 되는 게 무언인지 잘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학교에서 좀 똑똑하다 싶은 교사들은 다 못 견디고 학교를 떠나고 대학으로 가면 곧 학교 현장을 버린다. 언제 내가 교사였느냐는 태도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혁규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나는 그가 참 좋다.

 

교사 출신 연구자인 필자

이혁규는 자신의 역량 대부분을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개선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을 돕는 데 쓴다. 그래서 그의 주요한 활동이 바로 수업 비평이다. 나 역시 수업 비평이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교수들이 교사들의 수업을 보면 일방적인 피드백이나 가르침을 주는 자리가 되는 비평은 교사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어떤 교사나 자기 수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데 흔한 연구수업이나 수업공개에서는 교사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런 피드백은 교사나 수업의 발전을 부르지 못한다.

교사들은 수업에 있어 그야말로 전문가이지만 자기 수업이 학문적으로 어떤 강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못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그런 면을 보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야말로 하나의 수업 장면을 놓고 당사자와 동료, 연구자와 실천가가 머리를 맞대고 입체적으로 수업을 연구해야 한다. 이게 바로 올바른 수업 비평이다.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이가 바로 이혁규이다.

 

그의 강의는 현학적이지 않다. 무슨 강연이란 걸 하면 꼭 중간에 청중으로 하여금 저걸 적어야 하나? 싶은 이론들 한둘이 나온다. 대개는 외국의 무슨 교수가 말했다는 이론의 정리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런 용어들이 나와야 그 시간이 공부를 했다 싶은 기분을 맛보는지, 청중도 그걸 원하고 강연자도 그런 것을 해야 자신이 알찬 강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헛것이다. 그런 건 책을 읽어 얻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강연을 직접 들으러 가는 이유는 강연자와 청중 사이의 교감을 통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절박함을 나누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혁규의 강연은 교사들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만 이야기한다. 쓸데없이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알차다. 기회가 있으면 그의 강의를 꼭 들어보시라 권한다.

 

교사는 전문직인가?

이 책은 학교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잘 보였다. 교사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면서도 종합적으로 조망해준 이와 같은 글을 만나기 쉽지 않았기에, 읽고 나면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가령 현장에 여교사가 많은 현상에 대해서도 그래서 아이들 지도가 어렵다느니’, ‘학교가 여성화되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느니하는 비합리적인 문제 지적밖에 들어본 적이 없는데 비해 비록 미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여교사가 많아진 이유를 합리적으로 분석해 놓은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원인도, 그 현상도 명료해진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사회진출에 벽이 많은 고급여성인력이 학교로 몰리는 현상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학교의 여교사가 많아지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혁규는 또한 경제논리가 어떠하든 간에 도덕적이고 돌봄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 여교사들의 장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게 저하되는 공교육 이미지와 부합되는 단점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만약 남교사가 보다 많이 필요하다면 여성고급인력이 학교 아닌 다른 전문직종에도 문제없이 진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해결방안일지도 모른다.

 

이혁규는 교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그러나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몇 개의 키워드들에 대해서도 날서지 않으면서도 명료한 분석과 대안들을 제시한다. 가령 나 자신 가장 많이 고민하는 어떻게 하면 교사는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교사는 전문직인가?

우리나라 교원의 직업적 위상 강화를 위한 노력이 교직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노력과 유기적 관련성 없이 주로 경제적 처우 개선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문직이란 높은 윤리의식 자율적인 판단, 협력적인 문화, 봉사적인 태도, 고도의 실천적 지식 등을 갖추어야 한다. 교사의 처우 개선 문제를 넘어서서 교사의 양성, 교사의 책무, 교사의 윤리, 교사의 승진 체계 전반에 걸쳐서 우리 사회에 적합한 교사의 전문직화를 위한 논의와 노력이 새롭게 경주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전문직화를 위한 노력이 교사를 특권적 직업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 공교육 교원들은 자신의 직업적 지위 강화 못지않게 자신의 제자들이 종사하게 될 우리 사회의 모든 직업이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고 존중을 받을 수 잇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은 교사는 좋은 교장이 될 수 있을까?

이혁규의 글 중에는 좋은 교사는 곧 좋은 교장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문단이 있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좋은 교사가 곧 교장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교장 자리에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져 본인도 힘겹고 학교를 망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교장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은 교장이 되는 경로의 불투명성과 좋은 교사 = 좋은 교장의 등치가 성립되지 않는 실제의 수많은 사례들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경험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 현장에서 보면, 심지어 나쁘지 않은 평교사였던 이도 교장이 되면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일마저 자주 일어나는데 그 원인을 잘 파헤치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공교육의 민주화나 교육의 개선은 요원하다.

 

이혁규는 교사들이 교장직에 매력을 느끼는 요인을 외재적 요인 경제적 보상, 근무 여건, 이차적 혜택, 조직 구조 및 권한, 내재적 요인 개인적, 전문적, 성장, 존경과지지, 학교 변화 및 영향력으로 본다. 교장직이 허용하는 근무시간의 융통성, 시간 여유, 수업의 면제, 독립된 교장실 등을 교사들이 교장이 되고 싶어하게끔 만드는 매력요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학교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교육적 열정이 교장이 되고 싶게 하는 동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장직이 어렵고 까다롭지만 보상이 적은 직업이라는 외국 교사들의 인식과 달리 우리나라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교장직에 매력을 느끼고 교장이 되어서 얻는 지위와 명예의 상승에 관심을 갖는다. 교장들의 주관적 만족도는 높은 편(직업만족도 1위 초등교장, 49위 중등교장)이지만 교장들에 대한 사회적 만족도는 낮은 편이다. 교장 개개인의 역량이나 평판과 별개로 교장 승진 제도 자체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교장이 되는 것 자체가 교직 사회에서 그다지 영예롭지 않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

좋은 교사는 좋은 교장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장에게는 잘 가르치기는 능력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리더십, 조직 관리 능력, 의사 소통 및 갈등 관리 능력, 장학 및 컨설팅 능력, 학습자의 교수 학습 신장을 돋는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 능력 등 ... 단순히 교사를 오랫동안 하고 성실하고 훌륭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부수적으로 습득되지 않는다.

 

맞다. 교장은 교육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행정가이기도 해야 한다. 현장 교사들은 교장이 교육자로서 충실하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학교행정에서 해야 할 일도 많다. 현실의 교장들은 둘 다 잘 하지 못하고 특히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며 비교육적인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게 교사들이 교장들을 존경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분명 이는 교육현장에 불행한 일이다. 좋은 교장이 있어야 학교가 발전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행복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장에게 주어진 지나친 권한들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교장을 혜택을 누리고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닌 고단하지만 학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혁신을 가로막는 세력은 바로 교사들

이혁규는 교사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뼈있는 조언을 한다.

 

기존의 입시 교육을 넘어서서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구성원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입시는 현실임을 힘주어 강조하는 교사들의 핏대 올리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퇴근 시간쯤 우습게 여기며 혁신의 에너지로 무장하여 학생을 돌보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그 모든 것이 노동자로서 교사를 착취하는 나쁜 관습이라고 투덜거리며 탈주를 감행하는 교사의 모습도 보인다. 교장이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내려놓고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공간을 자율로 채우려는 교사가 있는 반면 그런 수평적 리더십으로 인해서 생겨난 느슨함을 사적 이익을 위해서 활용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리고 학교를 공동체로 상정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혁신 주체들 한편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학교 구성원들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 일반이 혁신학교 운동이 좋고 따라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천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모방하고 싶은 문화적 밈이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현장의 개혁을 가로막는 주범 중에는 안이한 교원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교사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위의 유형 중 자신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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