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리의 교사론 -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아침이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한 대학에 교직과목 특강을 나가면서 이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았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프레이리는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교사를 희망하지 않아도, 학생들에게는 필독서였던 기억이 있다. 특강에서 어떤 교직관을 세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교육학 책들을 살피다가 이 책을 집어든 순간 역시 프레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적어도 대한민국이 아직도 별로 변하지 않았거나 프레이리가 일찍이 혜안을 지녔던 것이거나일 터이다.

마침 젊은 교사에게라는 부제가 붙어있던 만큼 이 책은 쉽고 간결하게 교사들이 어찌 교단을 지켜야 할지를 설파한다. 그는 매우 진보적인 교육자였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완고해 보일 정도로 엄격하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단호한 교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싸워야 함을 강조하지만 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도 교사 자신을 전문가로서 벼리는 데 부지런해야 함을 강조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교사들이 이 책을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정치적 투쟁만이 교육적 개혁의 전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아이들을 존중하는 것과 교사의 본문을 헷갈리지는 않는지, 방임과 인권, 자유를 혼동하지는 않는지... 혹은 거꾸로 입으로는 인권과 진보를 말하면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프레이리를 놓고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학자를 다루어서 불편했다고 강의평가에 쓴 학생이 한 명 있었다. 특강에 참여한 네 명의 교사들에 대해 진보적인 교사들만이 아니라 보수적인 입장의 교사도 특강에 참여했더라면이라고 쓰기도 했는데 사실 특강에 참여한 교사 중 소위 진보적 성향의 교사는 한 분이 더 있었을 뿐이고 다른 두 분은 어떤 정치적 입장도 가지지 않은 교사였다.

80명의 학생 중 단 한 명의 의견이니 무시해도 될 법하지만 나는 내내 그 의견이 마음에 걸렸다. 프레이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으며 그를 중심으로 교직관 수업을 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섞이게도 마련이니 학생들 중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지닌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지간한 학생이었다면 굳이 진보적 교육학자가 불편하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학은 원래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라면 다양한 학자와 이론들을 접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곳이니까. 예비교사들이 좀 더 진보적이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잘못된 것일까.

 

프레이리는 교사들에게 묻는다. ‘권위주의적인 학교 행정 아래 굴복하는 양육자보모가 될 것인가, 민주적인 학교를 꿈꾸는 저항하는 교사가 될 것인가.’그의 답은 교사의 역할은 행정가들의 거만함과 무한권력에 맞서 품위 있고 적극적으로 저항해서 학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는 전문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다.

프레이리는 철저히 공부하는 전문가로서의 교사가 되라고 젊은 교사들을 독려하면서 어설프게 보모노릇이나 하는 게 교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을 방임하는 것을 자율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교육이 온정주의적 과업이 아니라 전문가적인 일임을 명심하라고 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보모교사는 행정의 시녀가 되어 아이들을 양치기처럼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으로 교사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이지, 아이들에게 무한사랑으로 열린 가슴을 가진 교사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양육자가 될 것인가, 저항하는 교사가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엄혹한 시기는 브라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은 또 다른 교사의 위상을 고민할 때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교사들은 사랑으로만 가득 찬 순종적인 보모도 거부하지만 저항하는 교사도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저 직업적 조건의 달콤함으로 교단의 모든 스트레스를 감내하려는 직업인들이 되어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요즘 젊은 교사들은 직업으로서 교사의 자리에 서서 아이들에 대한 헌신도, 자기를 희생해가며 정책을 변화시키려는 열정도 없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과거의 무기력한 대다수의 교사들이 그랬듯이 수업도 대충, 열의도 없음, 마지못해 월급날만 바라보며 가끔 들어오는 촌지에 대해 도덕적 감수성도 전혀 없었던 교사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진정한 교사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업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고 불의에 대해서는 정의로우며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되 싸울 때는 열정으로 나아가는.... 그런 교사들이 예나 지금이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소수였고 게다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다음과 같은 프레이리의 주장은 21세기인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신선하다. 교사가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면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프레이리는 어린 대학생에게만 아니라 26년차인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교사는 가르쳐야만 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일이 지식을 전수하는 일은 아니다. 학습자들이 사고하는 주체가 되고, 그들도 교사들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할 때 비로소 학습자들은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의미를 만들어내는 생산적 주체가 될 수 있다. 배우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몰랐던 바를 점차 알게 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전에 알았던 바를 새롭게 다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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