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의식의 방 - 프로이트와 융으로 분석한 100가지 꿈 이야기
김서영 지음 / 책세상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꿈이 많다. 꿈 때문에 다음 날 수면부족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꿈을 즐긴다. 마치 또 하나의 세상을 사는 것 같다. 기억하건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서서히 색깔이 있는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동물의 시력이 진화하듯 나의 꿈의 선명도는 진화해 왔고 지금은 굉장히 섬세한 풍경과 느낌을 실감하며 꿈을 즐긴다.

꿈을 꾸면 다음 날 그 꿈의 의미를 해석하려 이것저것을 찾아보았다. 동양적 꿈 해석을 해보았지만 결론은 내 꿈이 예지몽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상황을 후반영하는 경우는 많았다. 그런 의문들이 이 책을 만나고 나서 많이 풀렸다. 이 책을 통해 꿈의 새로운 세계로 접어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김서영은 프로이트를 연구한 심리학자이다. 자신의 꿈 일기를 쓰면서 융의 분석심리학에 관심을 갖는다. 전에도 내 꿈의 해석이 궁금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어 보았지만 내 심리상태를 해석해주는 접점을 만나지 못했다. 융을 읽으면서도 그가 말하는 꿈의 무의식 반영이 그저 학술이론으로만 읽혔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김서영을 만남으로써 나는 융을 다시 만난 기분이다. 그래, 아무 것도 예지해주지는 않지만 힘을 주기도 하고 들여다보게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하던 내 꿈의 정체는,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일 수도, 그림자의 경고일 수도, 아니무스의 반영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늘 미진하고 찜찜하게 남았던 프로이트에 대한 의심은 이 책을 통해 명확해졌고 이후에 만난 다른 심리학 책을 통해 그 이해를 깊게 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아무리 읽어도 허방다리를 짚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던 것은 연대라든가 사회라든가 통시적 관점이라든가, 그런 부분들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연대와 배려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어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만약 모든 학문을 연구한 결과 이 세상은 희망이 없으며 어떠한 노력도 무의미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과연 학문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프로이트를 읽으며 느껴졌던 갈등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 책 직전에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도 프로이트 이론의 사회성 결여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저자 김서영이 과연 전공을 버리고 분석심리학으로 완전히 발을 옮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융을 통해 공허함을 메우고 위로를 받았다는 지적에는 매우 공감을 한다. 나 역시 김서영을 통해 다시 만난 융으로 내 꿈을 재해석하면서 위로의 세계인 꿈의 세계로 다시 나아간다.

 

융은 대극을 통합하라고 조언하고 꿈에 나타난 무의식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한다. 김서영은 프로이트와 융 모두를 끌어들여 자기 꿈을 해석하는데 자기 전공이 아닌 분석심리학에 더 끌린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이트의 꿈 해석은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고 (특히 동양인들에게는) 꿈이나 자의식을 난도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비해 융은 보다 신화적이고 신비하면서도 위안이 되는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몇 권 안 되지만 융의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더 많이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김서영의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놀라운 것은 그와 내 꿈이 일치하는 바는 거의 없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여자 아이남자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왜 한국적 해몽에서 불길하다고 하는 여자아이 꿈을 자주 꾸는 건지 늘 궁금했는데 김서영은 그것을 자아라고 해석해준다. 근심이 아니라 자아인 것이다. 남자 역시 불안감이나 걱정거리가 아닌 나의 아니무스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남성적인 것들은 여자로서 내가 남성에 대해 갖는 성적인 욕구나 불안이 아닌 내 안에 숨은 남성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개는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나의 아니무스는 아마도 여자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불안이나 억울감을 대신 표현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남자로 태어난다면 나는 락 가수로 살고 싶다. 헤비메탈을 크게 틀고 빨간 록스타를 미친 듯이 몰고 가다 동해안 절벽 아래로 던져져 죽어버리는 상상 속의 나는 나의 그림자이다. 현실의 나는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지만 내 안에는 많은 열정과 욕구가 있다. 분노와 억울감도 많다. 안정적인 사람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다.

 

하나 더,

책에서 나는 꿈 속의 치유자존재에 대해 주목했다. 김서영은 꿈속에서 좋은 남자, 좋은 여자들의 존재를 자주 만난다. 힘들 때 치유자 역할을 하는 어떤 존재가 꿈에 그렇게 발현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치유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재작년에 책을 출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쓰기 이전에 소소한 글쓰기 작업을 독려했던 안준철 선생님과 이상대 선생님에서 시작하여 잠깐의 만남에 그칠지도 모를 매체의 기자들까지... 내 책을 통해 만나게 된 (대개는 여성들인) 활동가들, 어머니들... 그리고 그때부터 내 꿈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꿈 속 세상의 배경도 많이 달라졌고 등장인물도 달라졌다. 늘 너무 넓어서 문이 다 닫혀 있는 건지 불안했던 집, 정리가 안 되어 있고 잠금장치가 확인되지 않았던 미로 같던 집은 넓고 깔끔한 집으로 바뀌었다. 낯선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내게 호의적이다. 그들을 김서영 말대로 조력자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바꿔 생각해 보자.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치유가 조력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후배들이 나를 만나서 교사로서의 자기 삶이 달라졌다고 말한다면, 보수적이고 무력한 교사가 아닌 창의적이고 맞서 싸울 줄 아는 사람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면 나 역시 그런 역할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자들은 어떤가. 선생님은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한다고 해도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저를 믿어줄 것이라 생각한다는 제자들. 그들에게 나는 든든한 조력자일 것이다. 그들이 불안과 걱정의 꿈을 꿀 때 나는 그들 꿈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어깨를 잡아주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아 주고 어두운 복도에 불을 밝히며 앞장을 서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가 참 많지만 긍정적 해석이 제일 마음에 든다. 꿈이야 늘 꿈보다 해몽이지만 상담도 그러하듯이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떤 피드백이 가며,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꿈 때문에 내 삶이 더욱 칙칙해질 것이라면 그런 해석은 듣지 않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김서영이 꿈의 긍정적 분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석심리학적 해석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대학생 때 읽었던 융을 다시 공부하기로 했다. 융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힘과 긍정적인 피드백에서 어떤 길잡이 등불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김서영 책은 따뜻했다. 다른 이의 꿈 분석 사례이기는 하지만 가출한 아이를 만나려는 사회복지사 이야기는 교사인 내게 새삼 나의 역할을 일깨워 주었다. 또 마지막에 세월호를 언급하며 아파했던 부분을 읽으며 자기 공부를 사회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가끔 공부는 공부, 이론은 이론이지만 삶과 실천과는 무관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현실에서 아팠던 것을 공부로 찾고, 배운 것은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한 언급이 고마운 것이다.

 

많은 책들은 스며들 듯 내 인생을 가만가만 다독였지만 이 책처럼 인생의 방향을 바꿔주는 책들도 더러 만났다. 이 책 덕분에 나는 다시 융을 읽는다. 어쩌면 겉핥기로만 공부했던 심리학이 내 인생에 중요한 방향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중요한 역할을 김서영이 했다. 책 속의 그는 늘 책상에만 앉아 있는 서생(書生)인 듯이 자신을 묘사했지만 만약 내가 그의 책으로 비롯해 심리학을 조금이나마 깊게 공부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승화시킨다면 결국 그는 씨앗을 심은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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