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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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이 책은 나와 같은 교육공동체 벗의 이자 사회학자인 엄기호가 쓴 책이다. 제목이 무척 진하게 와 닿는다. 적어도 교사들은 그렇게 느낄 것이다. 여태까지 학교와 아이들이 병들어갈 때 가장 큰 주범 역할을 했던 것은 교사였고, 그러므로 교사는 가해자이지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교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이 나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교사도 학교가 싫다정도였더라도 많은 교사들이 맞아맞아, 하고 가볍게 동감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싫다두렵다로 나아가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며 남몰래 얼른 책을 집어 드는 시기가 되었다.

 

오늘날 교사들을 학교 가기 두렵게 만드는 일은 무엇일까? 이제 더 이상은 통하지 않게 된 교사의 권위에 맞서 살벌한 눈빛을 날리는 아이들 때문에, 그리고 따박따박 자기 아이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그리고 아이들끼리의 싸움조차 깨알같이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왕따와 폭력와 송사가 난무하는, ‘손해 볼까 두려워 서로를 핏발선 눈으로 노려보는이 사회의 적대적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면 오래 전부터 교사들을 가장 괴롭혔던 관리자들의 횡포는 이제 별 것도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 교장이 아무리 막무가내여도 교사를 짜르지는못했으니까. 이제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교단에서 물러나게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장, 교감 때문에 힘들고 지쳤을 때는 아이들이라는 숨통과 출구가 있었다. 교사의 주된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기에 아이들과의 교감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답답함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아이들과의 벽을 느끼고 적대적인 눈빛과 개김에 맞닥뜨려지는 순간, 교사는 이제는 더 이상 출구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엄기호의 글이 교사와 학생의 단절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단절의 사회적 원인을 짚고 있을 뿐 아니라, 교사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갈등의 꽤 중요한 부분임에도 별로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동료와의 관계성 문제도 짚는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공감하는 바다. 상대적으로 교사들의 스트레스 원인에서 동료관계가 덜 중요하게 비춰졌던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가 좋다면 동료들과의 관계를 좀 서걱거려도 상관없을 만큼 비중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뒤집으면, 그만큼 학교에서, 특히 수업에서 교사들의 협업이 적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동료와의 관계라고 말하면 수업이나 학급운영 등에서 서로 돕거나 교감하거나 서로를 발전시키는 의미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교무실에서 불협화음 없이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 많은 교사들은 비교적 평등한 편인 동료들 간의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경험하며 상처받아왔을 뿐 아니라,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요즘과 같은 시점에서는 단지 교무실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정도의 동료관계로는 학교생활을 잘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학교 안에서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과 문화적 괴리는 점점 심각한 문제가 되고 결국 교육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실이다.)

 

혁신학교는 지금 현재 출구가 없던 한국 교육의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그것이 유일하게 옳은 대안이냐를 떠나서 그나마 차선 혹은 차악일지라도 말이다. 꼭 혁신학교가 아니어도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검토되는 대부분의 학교 형태, 교육과정, 교육철학의 기조는 소통과 협업이다. 아이들에게도 협동학습을 통한 자기주도의 학습 태도를, 즉 물고기 잡는 법을 길러주는 교육이 행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교사들 스스로는 동료교사와의 협업 없이 혼자서 잘해내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동료가 단지 분위기를 어그러뜨리지 말아야 하는정도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수업을 연구해야 하는 연구 동반자로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중노동일지라도 사람들을 힘내서 일하게 하는 것은 관계이며 관계망의 가장 튼튼한 기저는 그 직업의 목적이 되는 관계일 것이다. 교사에게는 그것이 바로 학생들이다. 그것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무진단에 우리가 공감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거라면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비교적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편인 나도 가끔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착한 아이들이 다니는 안정적인 학교 분위기 덕에 큰 어려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던 나같은 경우는 매우 행운아일 뿐이라고 누군가가 옆에서 꼬집었다. 교단의 희망을 말하는 자 아직 덜 아파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 언젠가 넌더리를 내고 교단을 떠나고 싶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진단을 넘어 대안을 말하고 싶다. 근거 없는 희망의 독을 뿜어서도 안 되겠지만 대안 없는 절망론으로 그쳐도 안 된다고 말이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많은 논란이 되는 교육 불가능론을 어떻게든 뛰어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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