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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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열심히 하자, 독서를 열심히 하자, 고 주장하면 계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고미숙은 결국 그런 단순한 본질로 돌아간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될지 모르는데, 의식 있는 학부모나 교사들 중 훈육이나 강압이 없으면 그것이 곧 창의적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뿐 아니라 독서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강요가 되어 자율성을 억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자발성에 바탕을 두려다 보니 다양한 방식을 고심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강제를 하지 않다 보니 서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이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결국 아이들 스스로 책 읽고 공부하기를 기다리며 멍석을 무수히 펴놓았던 이 선생, 이 어미를 언젠가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가기까지 세월은 무수히 흐른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도 되는 건지,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다 자라버리는 건 아닌지, 솔직히 고민이 많다.

 

근학서점맏딸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끼고 살았다. 지금도 책을 좋아한다, 국어교사가 되어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다시피한 학급문고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독서방법을 통해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지만 절대 강요를 하지 않는다. 하여간 책과 밀접한 삶을 살아가는데, 이상하게도 집의 아이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책을 인생 가장 큰 낙으로 삼고 살지만 꼭 책이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내 삶에 반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책을 가장 큰 무기로 살았던 내 삶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몸으로 아는 인생, 미모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삶, 다양한 재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인생도 있는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책으로 위안과 방편을 삼았던 것은 아닌지.

 

책도 별로 읽지 않고 사교육도 거의 받지 않은데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은 나의 두 자녀는 너무나 당연지사, 학교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다행히 타고난 미술적 재능 덕에 큰 아이는 미대에 진학했다. 솔직히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자녀를 낳을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따로 사교육을 받아 SKY를 가기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수업 중에 열심히 듣는 정도였다면 어지간히는 하리라 생각했다. 아이들의 학교 성적을 위해 소중한 사춘기를 학원에서 썩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지나칠 정도로 참담했다.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은 견딜 수 있는데 왜 책도 안 읽는 걸까? 혹시 돌연변이 같이 머리가 지나치게 나쁜 아이들을 낳은 것일까? 특히 둘째는 특별한 재능으로 대학을 갈 것 같지도 않은데 공부조차도 하지 않았다. 1에서 고2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한 달여 동안 정말 단 한 글자의 공부도 하지 않고 아이는 잠자고, 먹고, 피아노 치고, 이 세 가지로 소일했다. 그리고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대학은 꼭 가고 싶단다. 검정고시를 보네 어쩌네 한다. 소고집이라 억지로 공부를 시켜서 되는 아이가 아니었다. 다양한 대안들을 함께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고2 5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검정고시 운운했지만 헤아려보니 검정고시를 보기에도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허영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학은 꼭 가고 싶어 했고 그것도 재수는 싫다 했다. 남들이 초3 때부터 사교육 받아가며 준비한 대입시를 고2 때 비로소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아이 성적은 지방대 갈까말까 한 성적이다. 학원은 받아주는 데도 없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가서 성적의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학원이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여태껏 딱 1달 다녀본 영어학원에서는 그 한 달 동안 영어 교재 6권을 떼게 했다. 못 외우면 남아서 마냥마냥 외울 때까지 하고 가게 해서 진저리가 난 아이는 다시는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겠다 했다. 그런 아이의 영어실력은 고2임에도 중2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학원은 싫고 과외를 한다 해서 영어 과외를 8개월 했다. 그 다음부터는 혼자 인강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아이, 3 올라가자마자 성적이 쑥쑥 오른다. 영어단어 실력이 형편없어 발음기호도 제대로 못 읽던 아이는 일일이 모르는 단어를 전자사전에서 찾아 따라 읽고 외웠다. 저런 속도로 언제 수능영어 공부를 할까 싶을 만큼 미련하게 공부하는 아이지만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해서 그냥 두었다. 인강을 들으며, 과외를 할 때도 아이는 내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공부 계획을 짰다.

 

지금은 대입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나 단 1년 반의 공부로는 아이가 원하는 대학을 갈 수는 없어서 갈수록 눈높이를 낮춰야 했고 어쩌면 정시에 합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합격해도 아쉬움이 남아 재수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동안 아이가 이룬 발전과 성장을 보면 당장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게 뭐 어떤가 싶다. 사실은 네가 원하는 바가 따로 있다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던 부모였는데 결국 선택도, 그 길로 가기 위한 방법도 다 아이가 결정했던 것이다.

공부하는 방법도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하나 스스로 터득해갔다. 물론 중간중간에 아이를 촉발하는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다.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 준 학교 선생님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일러준 과외 선생님들, 그런 선생님을 진심으로 믿었던 아이, 그리고 자기를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엄마, 아빠와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던 신뢰의 끈... 아이는 천재가 아니었고 엄청난 노력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본 나는 놀라고 또 놀랐다. 마음을 먹고 자신을 스스로 벼린다는 게 가능하구나, 그게 꼭 대학생활을 누려보고 싶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존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때때로 공부를 즐겼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공부할 때가 가장 즐거운 사람이지만 나의 딸처럼 공부하는 맛을 알아갔던 적이 있었나 싶다. 요즘 아이들이 놓치는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았다는 점에서 내 딸이야말로 진정한 호모 쿵푸스. 물론 아래의 권학문에 비추면 나는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 부모는 아닌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수능에서 가장 자신 있던 언어영역을 망쳤지만 아이는 아쉬워하는 나에게 내가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의연함은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본 사람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인생에 비합리적인 불행은 있어도 앞뒤가 안 맞는 행운은 잘 찾아오지 않는 법인 듯하다. 원인만큼의 결과가 따라야 그나마 예측이 가능하고 준비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노력은 좀더 계속되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아이는 좀더 성장할 것이다.

 

<권학문 勸學文> 북송 시대 문인 유영

부모가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 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가르친다 하더라도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 이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부모가 가르치는데 자식이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는 자식이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배우기는 하되 힘써 노력하지 않는 것/ 이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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