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미인 -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
김지은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그녀가 미셸 투르니예와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게 된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여성형 철자를 더 붙여 자신의 프랑스식 애칭을 '미셀'로 지었다는 그녀의 '천박한' 취향에 혀를 찼을 것 같다. 그러나 좋아하는 문인에 대한 열정이 여고생의 그것처럼 순수하여 사람 사이의 이런 인연이라면 그런 이름을 갖고 싶기도 하겠다고 이해가 된다. 이 책의 본류인 미술평론 사이사이에 자신이 어떻게 작품들을 만나고 예술적 감각을 키워나갔는지 하는 이야기들이 더 흥미를 끄는 것은, 그녀가 자랑해서가 아니다. 이야기마다 진실성이 느껴진다. 천성적으로 그녀는 고요한 가운데 안으로 끓는 열정을 지닌 이이며 눈치보기보다 자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천적인 애정을 퍼붓는 사람인 것 같다.

글은 참 재밌게 읽었다. 이야기를 이끄는 솜씨가 대단하다.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의 무게를 가벼이 보았던 내가 미안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사람이 소개하는 작품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차 싶었다. 전시회장에 울리는 내 발자욱 소리를 즐겼던 나, 배가 너무 불러 핸들에 걸릴까봐 운전을 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그 먼 길을 지하철 타고 (출산을 며칠 앞 둔 추운 2월에) 과천 현대미술관을 찾을 정도였던 나, 그녀의 책 속의 작품들은 왜 이리 낯선가. 그러고 보면 나의 미술 취향이라는 것은 매우 보수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도 유명하고 큰 전시회 쫓아다니기에도 바빴나 보다. 아니 어쩌면 나의 취향의 문제이기도 했겠지만 내게 열린 마음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은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내가 '아지트'라 부르는 토탈미술관과 가나아트홀에 가서 나는 이 책 속의 작품들을 만났다. '번역에 저항한다'전과 팝아트에 관한 전시회였다.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상하게도 나는, 뮤지컬을 보고 나면 그 작품의 다른 갈래(영화나 책, 관련된 사진이나 전시 등)을 만나게 된다. 관심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도 할 것이다. 대개는 작품을 먼저 알고(도판으로 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 다음 작품에 대한 이러저런 설명이나 감상을 만나곤 했는데 책을 먼저 읽고 작품들을 만나는 것도 참 괜찮은 공부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떠난 사랑도 세월이 흘러서도 다시 나를 살게 하는 것이다. 김지은 씨의 그 책이  새삼스레 무겁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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