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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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놓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책의 분위기가 좋아서 샀다. 읽기 전까지 설레는 몇 안 되는 책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게가 있고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니면 가끔 감성을 다스리는 책을 읽어야 모자라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섭취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쓴이는 파리에서 다시피아노 한 대와 조우하기를 바라 찾아 헤매다가 어느 뒷골목에서 피아노 공방을 만난다. 그 과정이 아름답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혼자 한가롭게 파리 뒷골목을 거닐다 피아노 소리를 듣고 공방에 들어가게 된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지만 남편과 파리의 시떼 섬을 거닐었던 기억이 난다. 관광객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파리를 살아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공방에서 만나는 피아노의 장인 이야기는 낯설다. 우리에게 피아노는 연주가의 것이 아니었던가. ‘기술자가 피아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 것인가, 라는 편견... 자신이 전문 연주가가 아닌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집에 피아노 조율을 하러 온 분이 간단한 연주를 마치고 피아노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놓지 말고 늘 청결하게 다루어 줄 것을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 섬세한 감각과 애정이 없다면 단지 기술만 가지고 그 일이 가능할 리 없다.

 

나 역시 국민학교 4학년 때 몇 달을 배우고 바이엘 끝날 무렵 피아노를 때려치운 경험이 있다. 자력으로 노래 반주를 익혔으니 아주 음감이 없는 것은 아닐 터인데(중학교 때, 우리 삼남매 중어머니가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 사들인 슘멜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물론 고향의 봄수준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피아노를 다시 배우리라 생각했다.

직장을 옮기는 와중에 큰 아이를 아직 시댁에서 돌보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남편이 퇴근하지 않은 저녁 시간에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저녁 7시면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 비어 있는 연습실 열쇠를 주면서 선생님은 맘껏 연습하고 가라고 했다. 밤 열시까지 연습했어도 진도는 체르니 100번을 마치지 못했지만 그 혼자만의 시간은 아련하게 귀했다. 곧 둘째가 들어서고 첫 아이도 데려오느라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피아노 강습은 그만두었고, 그때 실력이 늘긴 한 건지 긴가 민가 하지만 그 약 석 달 정도의 혼자만의 연습시간은 참 행복했다.

 

글쓴이가 피아노를 배우던 연습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건물 등 사이에 작은 광장 같은(우리의 마당 같은) 공간이 보인다고 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유럽의 풍경이 익숙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남의 것에 대한 동경이라니. 그런가 하면 이 책에는 그럼 문학적인 풍경 말고도 피아노에 대한, 피아노의 역사에 대한, 피아노의 기능적인 면에 대한 이야기가 묘하게 짜여져 있다. 전문지식이 없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장인들의 숨결이나 피아노를 다루는 사람들의 애정이 잘 읽힌다. ‘영창 피아노이름도 나온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피아노도 영창이다. 시집 올 때 엄마가 사주신 피아노. 태어날 아이가 치게 될 거라던 그 피아노를 정말로 우리 아이들이 즐겨 치고 있다. 아들이 치는 월광과 딸이 치는 플라워 댄스로 우리는 자주 행복해 한다. 그러고 보면 고급스럽고 우아하기만 했지 고향의 봄선구자를 넘어선 연주자를 만나지 못했던 1980년대의 그 슘멜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 그립고 미안하기도 하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어린 귀에도 깊은 데서 울리는 듯 고상하던 그 까만 피아노의 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집이 어려워졌기도 했고 아무도 치는 이 없어 결국 어디론가 팔려갔던, 마당있는 집의 추억과 함께 사라졌던 우리 어린 날의 까만 슘멜... 이 책은 내게 그런 추억도 되살려 주었다. 감성의 비타민은 충분히 채워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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