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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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 나이지만 비교적 좋아하는 작가였던 박완서 선생. 수업 시간에는 그가 40세에 문단에 데뷔한 이야기를 종종했었다. 요즘이야 나이나 이전의 직업에 상관없이 꿈을 펼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지만 나만 해도 육아에 지치고 세월에 지치면서 세상의 상식에는 맞지 않을지라도 ‘또 다른 삶’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박완서 선생을 통해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뒷부분은 주로 ‘죽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사람 이야기일 뿐이지만 연세가 많았을 때 썼기 때문인지 고인이 되신 분들에 대한 추억들이 많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냥 소소한 일들인데도, 또 거창한 수사를 별로 쓰지 않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바로 옆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세밀하게 그 느낌을 살려내는지,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법정 스님 이야기의 세세함에 놀라면서, 한편 당신 스스로도 고인이 되어버리셨는데 맑게 살다 간 이들의 하늘나라 이야기를 듣는 듯 해 마음이 찡하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파일로 메모하여 저장하는 버릇이 들었다. 책에 대한 복습을 하는 것이다. 여기도 그런 구절이 몇 있다. 내가 선생이라서 (사실 박완서 선생은 학교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도) 당신 마당에 핀 꽃들 이름을 외우는 이유를 대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 예쁜 아이 말고도 말썽꾸러기도 선생님이 쉽게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걸 알게 되면 나처럼 모든 평범한 아이는 평범 자체에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라고 썼다. 뜨끔하다. 나 역시 잘하는 아이 혹은 못하는 아이를 먼저 외우는 평범한 선생이다. 다른 선생들보다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고 늘 불러주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것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을 많은 수업과 많은 학생 수 탓으로 돌리곤 했고, 평범한 아이들의 숨은 아픔에 대해서 교사들이 섬세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늘 갈파하면서도 정작 그 아이들에게로 더 많은 관심을 보내긴 했던가... 말썽 피는 아이들 건사하느라 허덕허덕한 무능한 교사는 아니었던가... 내년 새학기에는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 이름을 먼저 외우고 들어가리라, 그들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리라, 다짐을 해 본다.

 

이건 별로 중요한 감상은 아니지만, 박완서 선생이 애주가라는 사실이 참 좋았다. 타고난 체질일 수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음주 문화’ 때문일 수도 있고, 사실은 그 분의 아픈 사연 때문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 역시 적당히 취할 만큼의 음주를 자주 즐기는 사람으로서 어쩐지 공감이 되는 것이다. 술에 취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끄적거리는 시간이 참 좋다. 물론 식구들과 어울려서도 좋은 분위기에서 자주 마시다 보니 우리 집 아이들은 ‘술은 좋은 것’이라고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된 면도 있다. 고민은 되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즐거움이었는데, 선생의 술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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