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 읽다가 때려쳤던 지난 번 책 이후, 그리고 ‘만들어진 신’의 중언부언에 질린 이후, 번역의 문제는 저자의 문제든 리처드 도킨스의 책은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다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두 가지. 개정판이 나왔다. 역자는 같은 사람이지만 번역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듯 수정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 책을 꼭 다시 읽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들이 군대에 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군대 간 지 벌 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야 서평을 쓰니 참 오래 읽고 오래 정리하고 오래 쓰고 있다 싶다.

아들 군대 간 게 이 책이랑 무슨 상관이랴. 군대를 가겠노라 했던 그 무렵 연평도 사건이 터졌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이 정권 끝나고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 아이들에게 군대는 무슨 원죄처럼, 빨리 벗어버려야 하는 어떤 짐처럼, 한편 삶의 전환을 꿈꿀 때의 도피처처럼, 끈적하면서도 불안한 애착관계 같은 이상한 존재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 생활 1년의 회의와 불안한 미래는 ‘이대로는 안 된다’(그럼, 군대 가면 뭐 달라지나?)는 위기의식을 갖게 했나 보다.그건 네 입장이고, 나는 어미로서 마음이 불안하다. 이 불안감의 근원이 뭔가, 자꾸자꾸 생각하다 온갖 기도와 주문으로도 가라앉지 않는 불안은 오히려 나를 쿨하게 만들었다.

‘나의 모성애는 감성이나 영혼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즉 나의 유전자가 간절히 내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걱정이 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를 객관화시킬 때 오는 편안함은 있다. 마치 나의 존재가 이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같이 미약한 존재임을 알 때,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가벼워짐을 느끼듯 말이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마치 종교 서적을 읽듯, 과학에 기대 불안감을 위무 받을 목적으로 읽었다는 뜻이다. 뭐, 책의 내용에서 당장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암컷의 모성애가 수컷에 비해 강한 이유를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것에서 나오는 것임이 뒤에 언급된다. 자식을 키우는 데 더 많은 공력을 들이는 것이 암컷이기에 대체로 동물들 대부분이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강하다는 점, 수태 기간이 짧고 생산, 양육의 과정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자식을 어떻게든 잘 보호하려는 마음이 더 크다는 점, 이 책이 아니어도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답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는 과정에서 더 큰 위로를 받다가, 천천히 읽는 책의 진도는 어느 새 아들이 훈련소를 수료하는 시기를 따라잡지 못했고, 자대배치에 이병 적응의 시간을 겪는 동안 나는 내가 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목적조차 잊어버렸다.

 

책 속에는 더 많은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

그 중 ‘이타성’에 관한 대목도 재미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은,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다 유전자의 이기심이 작동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인간이 자식을 입양하듯 도덕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메카니즘의 작동 때문이지 결코 과학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성을 떠나 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와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 본 황제펭귄의 행동을 묶어 ‘협력과 배려’ ‘공존과 공생’의 중요성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를 마련했다.

돌고래는 자기 친척이 아니어도 물 속에서 숨을 못 쉬고 죽어가는 동족을 보면 힘을 합쳐 수면 위로 밀어 올린단다. 포유류인 돌고래는 일정 시간 이상 물 속에 있으면 산소가 부족해서 죽는데 가끔 어린 돌고래나 병든 돌고래가 자기 힘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폐호흡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죽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동족 보존을 위해 같은 동족을 구조하는 행위를 하는 셈이다.

황제펭귄도 영하 50의 서식지에서 알을 낳고 살며 그 혹한을 이기기 위해 서로 어깨를 맞대로 몸을 옹송거리는데 이때 ‘허들링’이란 걸 하면서 바깥에 있는 펭귄이 조금씩 안쪽으로 자리를 이동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밖에 있는 펭귄들이 얼어죽을 것이고 결국은 공멸로 갈 것이다.

이것이 공생을 위해 유전자가 시키는 일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지혜로운 일인가 싶다. 결국 인간의 ‘복지 시스템’이라는 것도 ‘약육강식’이라는 법칙에 의해서라면 공멸할지도 모르는 인간존재에 대한 유전자의 보호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빈자를 구제하지 못하면 종족 보존이 안 될 뿐 아니라 범죄와 전쟁으로 결국 공멸로 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는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새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방법이 아주 재미있다. 그 세계에도 행실이 헤픈 암컷과 바람둥이 수컷이 있다. 처음에는 이들이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자녀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하게 된다. 유전자 법칙에 의해 조신한 암컷, 자상한 수컷의 유전자가 더 잘 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암컷은 수컷을 고를 때 자녀를 잘 돌볼 것 같은 수컷을 고른단다. 사람도 결혼의 조건에 남자를 고를 때 우수한 자녀를 만들어 줄 이성에게 끌린다고 한다. 대부분의 여자는 건강하고 매력적인 남자를 고르지만 외모가 별로여도 똑똑한 남자 역시 여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유전자의 법칙 때문이 아닐까. 젊은 여자들이 멋진 남자에게 끌리다가도 결혼에 임박하여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면서 특히 자상한 남자에게 끌리는 것도 비슷한 이치 아닌가 모르겠다.

암컷 새들도 배우자를 고를 때 수태하기 전에 집이나 먹이가 준비되지 않으면 교접을 거부한단다. 우리 사회에 젊은 여자(남자도 마찬가지지만)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출산을 거부하는 것은 안전하게 자녀를 키울 조건이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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