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좋아하는 필자 중 하나인 최재천 교수, 여러모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존재라고 인정하지만 특히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과학자'의 귀감으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아인슈타인이나 쳇 레이모 같은 사람과 더불어 많이 소개하는 분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전공과 상관없이 문학성이 뛰어난 에세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데 비해 우리는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학문적으로는 꽤 의미가 있지만 대중적으로 읽기 어려운 현학적인 문장 혹은 문장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비문으로 전달력이 떨어지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게 늘 안타까웠다.  이것은 물론 기본적인 문장 공부가 덜 된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문장도 그렇지만 인문학적 관점이 부족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우리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최재천이나 정재승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기대감에 부풀어, 또 하나, 제자들에게 맘껏 권할 만한 책이 나왔으려니 하고 책을 펼쳤다. 서평들은 또 왜 그리 좋은지 더더욱 기대를 하며 주말,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다.  

최교수는 나보다 위의 연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의 기억 중 공감될 만한 부분이 많아서 나로서는 더욱 재미있었다. 그에게 백과사전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금성에서 나온 학년별 교과별 백과사전이 있었고 동서문학전집과 더불어 딱따구리 문고가 있었다. 아직 개발이 덜 된 동네 뒷산을 뛰어놀던 기억도, 비록 어른이 다 되어 발령 받아 간 곳이긴 하지만 강원도의 추억도 공감이 된다. 그래서 이 책, 꼭 우리 집 아이들, 학교 아이들에게 권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중간중간 매사에 눈을 빛내며 모든 일에 열심이던 그가 인생의 접점에서 만났던 책 이야기도 정말 유용하다. 아이들 읽기 좋게 쓴 문장도 참 마음에 든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서 놀라워하며 읽었던 '문학적 문장'들은 거의 없지만 이야기 자체만으로 재미있다.  

하지만 읽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우리집 아이들에게 읽히지 않기로 했다. 학교에서 청소년인문학토론반 아이들에게 적극 권하려 했던 계획도 접었다. 그저 우리 반에서 곤충에 관심이 많아 과학탐구대회에 자주 나가 입상을 하는 도영이에게는 이 책을 빌려주기로 했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상류층일텐데 그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군인의 아들로 자란 최교수는 청렴하고 엄격한 가정교육의 성공 케이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낸 과정이 아무리 본받을 만하다 하여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타고난 재능이 일단 뛰어난 이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때, 공부좀 한다 하는 아이들은 꽤 고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복중고, 서울대, 하버드대를 거쳐 서울대, 이대 교수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적절한 재능과 가정교육이 뒷받침되는 아이들에게는 '꿈'일 것이다. 그런 종류의 꿈이 80점짜리 아이를 90점으로 이끌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 이 책은 이 책 대로의 사명이 있고 그것을 잘 해낼 것 같다.  

하지만,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것을 나누어야 함을, 재능을 뒷받침해 줄 좋은 집안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그나 그의 부모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키워준 것임을 알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함께 나누어야 할지를 숙고하게 하는, 그런 기대치에는, 이 책은 많이 못 미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심지어는, 이렇게 뛰어나게 살지 못한 일반 어버이로서의 열등감마저 느꼈다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피해의식이려나. 물론 최재천 교수는 그 모든 하늘의 선물을 마치 제가 잘나서 그렇게 살게 된 줄 알면서 혼자만 누리는 사람들과는 다르고, 진심으로 자기가 가진 좋은 것들을 어린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다. 자연을 보는 눈이 따뜻한 것처럼 사람을 보는 눈도 따뜻한 사람이다. 그가 자신에 대해 스스로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잘난 체를 하고자 해서라기보다 그야말로 남에 대해서든 자신에 대해서든 긍정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미덕이 이 책에서 잘 살아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자신의 입지전적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아빠가 말야, 이렇게 저렇게 화려하게 공부했어~ 이런 이야기를 듣는 느낌.

이 책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이, 그래, 이렇게 매사에 즐기면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무엇을 읽어도 빛나는 충격을 받을 줄 아는 그런 자세을 배워야겠어, 라는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면 최고의 효과를 얻는 것이리라. 그래, 세상의 수많은 어린 최재천들의 긍정 에너지는 그렇게 이 책에서 자신들이 정말 얻어야 하는 좋은 것들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겠지.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칸에 시퍼렇게 꽂혀있는 이 책이 또하나의 서울대 신화, 하버드 신화, 공부 지상주의 신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서와 통섭과 자연과의 교감, 인문학적 학문의 자세에 대한 돌풍을 일으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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