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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HaHa! 유머 교수법 -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모두 즐거워지는
도니 템블린 지음, 윤영삼 옮김 / 다산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교원평가와 유머
다양한 방향으로 교원에 대한 평가가 진행 중이다. 교과부(와 조중동)에서 그토록 강력히 원했던 교원평가는 아직 정식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지만 이미 사회적 분위기는 교사에 대한 평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실지로 다양한 방식으로 교사들은 평가받고 있다. 학교 수업은 학부모들에게 공개된 지 오래되었고 실험과 시험운영이란 형식으로 몇 번씩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내가 속한 사립학교에서는 재단평가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에 대한 관리자의 평가가 이미 진행된 지 오래다. 성과급은 또 어떠한가. 평가자가 교내의 교사들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성과급 지급을 위한 성적표를 받을 때 교무실 분위기는 참으로 암울하다.
하지만, 교사는 평가받아야 한다. 여론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사는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평가라는 것 자체가 교육적으로 의미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떠나서도, 교사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교육을 행하는 교사들이 홀대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학교를 망치고 있는, 여태까지 학교를 망쳐온 그 수많은 가짜 교사들, 교사로서 아이들을 짓밟다가 결국 교감으로, 교장으로 올라서서 더욱 학교를 망쳐왔던 그들, 그들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는 이토록 망가졌다. 물론,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제대로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조건들이 요구된다. 근평처럼 잘못된 평가가 확대될 뿐이라는 두려움이 교사들에게는 강하다. 실현될 가능성 별로 없는 조건들을 채워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전교조는 평가 자체를 거부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덜 나쁜 조건들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생님 설명이 졸려요
유머책 이야기하려다가 심각해졌다.
아이들에게 수업만족도 조사라는 것을 받는다. 일종의 성적표다. 내 수업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지.... 몇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이 ‘수업만족도 조사’라는 평가를 받을 때마다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선생님이 설명할 때 수업이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오해는 마시라. 아이들이 ‘재미없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웃기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수업의 구성이나 집중도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른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일에 대해 짜임새 있게 수업을 하면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요즘 아이들은 5분 간격으로 유머를 빵빵 터뜨려 줘야 한다. 아니면 동영상이나 이벤트 같은 것으로 지루할 틈 없이 수업을 구성해야 한다. 내 국어 수업은 아이들이 만들고 쓰고 두레별로 토의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이루어지므로 지루할 틈은 없지만 행여 내가 조금이라도 길게 설명을 할라치면 진지하기 짝이 없는 내 언변에 아이들이 숙연해지기 일쑤다. 그렇다고 착한 우리 아이들, 열심히 설명하는 선생님한테 미안해 졸기도 어려웠겠지...
그래, 결심했다, 나도 웃기는 선생님이 되어 보자. 가물가물하지만 한때 나도 쫌 웃기는 사람 아니었을까? 언제부터 나는 유머를 쳐도 모인 사람들 모두 뭔가 깊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듣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그래 나도 웃기는 선생님이 되자!
그래서 재작년부터인가 나는 유머 관련 책들을 사 모으고 연극적 수업에 대해 연구했다. 내 목소리가 너무 진지한 것 같아서 발성법에 대한 책과 화술에 대한 책도 사 모았다. 사실, 책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은 하고 있지만 어디 가서 화술 같은 거 배우기는 너무 쑥스럽다. 집에서 혼자 발성 연습하고 녹음하고 그럴 때마다 식구들이 웃기도 하고 유머집 펴놓고 깔깔거리거나 개그콘서트 꼭 봐야 한다고 우기면 의아해 하기도 했지만, 또, 그렇게 한다고 과연 내 유머가 늘긴 느는 거냐 회의도 많이 느꼈지만, 보아라, 이번 1학기 수업만족도조사에서 아이들은 선생님, 국어가 넘 재미있어요. 썰렁할 때도 있지만 웃겨요, 등등의 평가와 더불어 목소리가 졸리다, 유머좀 하시라, 이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건 있었다. “국어 선생님 수업의 좋은 점; 가끔 유머를 친다(효과는 없지만) ...”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웃기진 않아도 웃겨주려고 노력하는 나를 존중해 준다. 우리 반 녀석들이 유독 내 유머에 안 웃어 주길래 “이봐이봐, 우리 반은 왜 안 웃을까?” 그랬더니 너무 솔직하고 맑아서 가끔 뒤통수를 치는 우리 반 정우가 “선생니임~, 선생님 유머가 70년대 개그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해서 애들이 뒤늦게 웃었다. 애들 말로는 담임 반이라 야단도 많이 맞고 진지한 훈화도 많이 듣고 하다 보니 선생님 말은 다 진지하게 듣는다나. 그래도 유치하나마 조폭 유머, 똥개그, 삑사리, 랩개그(운율 가르치면서 랩송도 부르고 그랬다) 사투리 연기... 등등 부끄러워하지 않고 구사하려고 애쓴다. 뭐 사실 중학교 1학년 정도면 썰렁개그를 즐겨줄 정도의 순수성은 아직 갖고 있다. 거기다 유치개그를 섞으면 더더욱 순수하게 웃어준다.(앗, 우리랑 정신연령이 비슷한 아줌마다~! 라고 생각하는 듯)
유머, 중요한 건 마음이다
책은 참으로 미국적이다. 별 거 아니어도 온갖 추임새를 섞어 격하게 반응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는 관점으로, 학생(청중)의 반응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수업을 좋은 수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머를 구사하는 방법론이라기보다 학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수업법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읽다 보니 기교로서의 유머가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설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 유머도 그렇다, 웃기는 방법을 익히는 것보다 웃겨보겠노라고 마음을, ‘마음을’(우리는 그것을 의식, 혹은 마인드라고 하지 않나. 마인드가 안 돼 있다는 둥, 의식교육이 중요하다는 둥)제대로 갖추는 데 힘을 싣는다. 밝은 마음, 그리고 학생들을 존중하는 마음, 자기 강의를 충분히 즐기려는 태도, 그런 데서 유머가 나온다는 것. 맞다. 두려운 마음, 청중을 싫어하는 마음 가운데서 유머가 나올 리 없다. 나와도 상대를 깎아내리는 유머를 하겠지.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을 웃기기도 어렵다.
지금 내가 수업을 들어가는 반 중에서 어떤 아이들은 내가 웃기려는 동작 또는 표정만 지어도 벌써 웃을 태세가 되어 있는 아이들이 있다. 내용이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길 거야, 라는 기대감이 그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국어 선생님 참 재밌어, 오늘 수업에도 뭐가 하나 나오겠지? 하는 마음에 내가 눈만 똥그랗게 뜨고 과장된 억양만 해도 일단 웃어준다. 그러면 난 그렇게 웃어주는 애들이 예뻐서 또 별것도 아닌 말장난이라도 성의껏 해 보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잘 안 웃어주는 중3 교실에선 나도 그들과 똑같은 八자 입꼬리를 하고 이 무거운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우리 어깨에 짊어지고 비판적 문학의 사회성을 공부하게 된다.(얘들아, ‘비’웃지 말고 그냥 웃어줘~ TT)
재미있는 수업의 팁 하나. 교사가 먼저, 자주, 크게 웃어라.
아이들과 수업을 주고 받다가 보면 누가 재치있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진짜 재미있게 웃어준다. 그러면 아이들이 질문, 대답, 발표를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사를 당연히 좋아하고 교사의 말에 역시 웃음으로 화답한다.
둘, 아이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잘 알고, 사용하라.
요즘 아이들은 졸라, 레알, 짱나, 빡쳐, 이런 말들을 많이 쓴다. 물론 고쳐주어야 하지만 사실 고쳐지지 않는다. 고치려고 덤비면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그런 용어를 쓰진 않겠지만 마음도 안 연다. 수업 중 이런 용어들을 거침없이 쓰면 거리감도 줄고 설명이 잘 이해되도록 돕기도 한다. (예: 구어체와 문어체 설명할 때, “너네, 친구한테 말할 때, 나 오늘 아침 홍마한테 머리 걸려서 졸라 빡쳤어,” 이렇게 말하지. 이게 구어체야. 하지만 국어시간에 수행평가로 생활문 쓰기를 할 때 그렇게 쓰는 친구는 없잖아. “오늘 아침 생활지도부 선생님께 걸려서 정말 화가 났다.” 이렇게 쓴다구, 이건 문어체야.) 물론 과하면 안 되고 비속한 표현을 권장하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국어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언어를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많이 수업에 쓴다는 거 아닌가? 잘 알아야 가르치든 고치든 하지 뭐...
셋, 유머도 연습하면 는다.
아무리 해도 잘 안 되는 성대모사는 그렇다 치고 하다못해 개콘에 나오는 유행어도 잘 따라하면 수업에 쓸 수 있다. 연습하면 자신감도 붙는다. 사투리도 그렇다. 국어시간엔 사투리로 읽어야 하는 지문도 많이 나온다. 때론 아나운서처럼, 때론 충청도 할머니처럼, 어색하지 않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으면 아이들이 더 즐겁게 수업하겠지.
진짜 재미있는 수업은 짜임새 있는 수업이지만
오해는 마시라. 오직 웃기기만 하려고 수업을 하겠는가? 수업을 잘 하고 싶어서 웃음을 고민하는 것일 뿐.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너무 미디어와 개그에 매달려 수업의 본질을 흐린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개는 정말 자기 수업을 잘 하고 싶은 노력의 일환으로 그런 것들을 준비할 것이다. 하물며 나처럼 나이가 들어가는 교사들은 더더욱 수업방법을 개선하고 시대 흐름과 아이들의 정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유머는 그런 노력의 일부분과 관계있다. 아이들과 잘 소통하고 싶은 교사의 간절한 바람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한 시간 수업이 진정 재미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잘 구성된 수업, 잘 준비된 자료들이 필요하다. 그런 짜임새 있는 수업 앞에서는 아이들도 미안해서라도 열심히 하려고들 한다. 거기에 웃음은 고명이다. 통깨 약간. 혹은 후춧가루... 없으면 섭섭하다.
‘하하하 유머 교수법’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뽑아 보았다.
- 유머를 즐기면 상상력이 샘솟는다.
- 당신 스스로 학생들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이 되어라
- 모든 학생이 손을 들게끔 질문하라.
저자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좋은 유머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유머이다. 깎아내리고 누군가를 바보 만들어서 나머지 사람들이 웃는 그런 유머를 하지 말라고 한다. 참 좋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또, 유머에 실패했을 때 수업에 실수가 있었을 때에도 솔직한 태도와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일 때 학생들은 너그러워지고 오히려 더 수업에 높은 참여도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럴 때의 표정, 몸가짐 하나하나는 사실 배워서라기보다 품성이나 마음가짐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경멸하고 있는 교사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기도 모르게 경멸의 눈빛을 쏜다. 아이들은 정확히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뭐 선생님이 날 야단치거나 뭐라고 한 건 아니니까) 이상하게 주눅이 들고 기분 나빠지는 경험을 한다. 거꾸로 아이들을 존중하는 선생님 말에서는 여유가 있다. 아이들이 뭐라고 말하면 별 거 아닌 말에도 따스하고 재치있게 응대를 한다. 딸아이 담임 선생님도 내 또래 여선생님인데 아이들이 귀여운 짓을 하면 “아유, 지지배, 이쁜 척은...” 아이가 못마땅한 행동을 하면 “너 자꾸 그러면 나 오늘 너한테 삐친다.” 등 식의 반응을 한단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런 말들에서 유머감각과 애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써볼 만한 방법들도 많이 보인다.
특히 ‘그래 하지만 게임- ‘그래 그러면’, 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버릇을 갖게 하는 게임’은 긍정적인 마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좋은 게임이다. 수업이 지루할 때 정돈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난 너희들이 알고 있을 줄 알았어, 란 표정으로 진지하게 지어보이기. ’ 이것도 재미있다.
또 내가 수업 시간에 쓰는 ‘곰돌이에게 설명해주기’(꼭 외워야 하는 내용을 배우고 나면 1분 동안 외우기, 그 다음에 짝꿍을 곰돌이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혹은 초3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쉬운 말로 설명해주기)와 매우 유사한 ‘스터디 듀엣’(짝꿍을 지금 막 들어온 지각생이라 생각하고 방금 배운 내용 가르쳐 주기)도 꽤 좋은 방법이다. ‘곰돌이 기법’은 서술형 시험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배운 내용을 자기 언어로 풀어 말하기 기법이고 가르치며 배운다는 점에서도 학습효과가 매우 높다. 학습능력이 낮거나 특히 잘하는 아이는 앞으로 불러서 교사와 짝꿍이 되어 해보기도 하고, 발표를 할 때도 “자, 선생님을 곰돌이라고 생각하고 내게 잘 설명해줘. 쉽게 설명해야 해?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곰돌이를 구박하진 마...” 이렇게 하면 발표의 긴장감을 풀고 할 수 있다.
저자인 도니 탬블린이 ‘농담의 노하우’라고 밝힌 네 가지도 유용하다.
1. 짧게! 2. 구체적으로 3. 펀치 라인은 마지막에 4. 침묵!
마지막으로, 잠자리에서 이 책을 읽다가 혼자 너무 낄낄거려서 남편도 같이 웃었던 이 책 속의 유머 하나,
주차장에 서 있는 낡은 경차 뒤에 이런 스티커가 붙어 있다.
“ 나는 커서 그랜저가 될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