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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 - 송기숙 산문집
송기숙 지음 / 화남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에도 언급된 황석영 씨가 별명이 황구라라던가. 그런데 그와 고은과 더불어 지은이에게도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구라'라는 속어에는 물론 '거짓과 과장'의 혐의가 있긴 하지만 한편 참 소소한 것조차도 무지하게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귀여운 뻥끼(氣)를 일컫는 애교스런 표현이기도 하니까 감히 그들을 묶어서 그렇게 불러 보는 것이다.
국어 선생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를 문학적으로뿐 아니라 분석적으로도 종합적으로도 보여준다. 나도 수업 시간에 '두레'를 짜서 공부하는데(초등학교의 모둠 수업과 같은 개념이다.) 아이들에게 왜 조組가 아닌 두레여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공부좀 하는 집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은 이 두레수업을 몹시 싫어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손해라는 것이다. 수고는 그들이 다하고 점수는 공동점수를 받으니 이 아니 불공평하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나는 달리 설명한다. 일종의 팀이 협력하여 공부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를 뿐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아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 특히 리더쉽을 기를 좋은 기회라고,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또 어떨 때는 혼자 책으로 공부할 때는 잘 하지만 협력해서 공부할 때 어려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배운다고, 이것이야말로 윈-윈 게임이라고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그런 협력학습 정신은 우리 조상들의 두레정신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알았던 그 두레정신이란 것이 근거를 가지고 당당하고 단단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산문집이지만 에세이이고 그 에세이는 서양의 가벼운 '논문'의 개념과도 닿아있다. 그러면서도 그 글빨이 참 술술 읽히는 게 아주 재미있다.
뒤로 가면 송기숙의 인물평이 나온다. 고은, 황석영, 박현채... 실존의 인물을 전설의 인물로 승격시키는 말빨의 힘이여! 무협소설 속에서 8도를 종횡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황석영, 자유영혼으로 그 육신을 넘나든 듯한 고은, 역사 속에서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나와 굵은 목소리로 나즈막하게, 그러나 짧게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사라진 박현채... 송기숙 소설 속 인물들 같다. 다들 한 말빨, 글빨 하던 이들이었고 시대의 풍운아들이(었)다. 누구는 그래서 송기숙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이제는 그런 화려한 필치를 구사하는 열정의 문인들의 시대는 가버린 듯 싶어 아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