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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평점 :
이 책에서 거듭 나오는 귀절, 김선우가 어린 날 가슴에 새겼다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그녀와 비슷한 나이 때 나는 실험극장인가에서 보고 온 연극 팜플렛에서 뜯어낸 '할일많은 세상, 언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랴"란 구절을 책상앞에 붙여두고 알수없는 열정을 태웠던 것 같은데... 그리고 김선우보다 훨씬 많은 지금의 나이에도 난 '나는 자유'라고 외칠 수 없는데... 두려운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이 별'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불러놓고 나니 나의 생은 더 작아보이고 아프거나 기쁜 일들이 조금 차분해 보인다. 어쩐지 그 사람은 바로 이 글을 썼던 비슷한 나이 무렵의 나처럼 자주 길 위에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안다. 도로가 4차선, 6차선으로 넓게 포장되기 전, 미루나무가 뽑혀나가기 전의, 알 수 없는 순간에 파르스름한 하늘과 땅이 두려울 정도로 시퍼렇게 저물어 버리는 강원도의 7번 국도를. 그리고 그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나무와 산과 들판 혹은 바다 위로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지 하는 얼굴로 조금은 빗긴 얼굴로 떠 있던 달과 별들을...
그 사람의 글은 시도 아니고 경전도 아니지만 어쩐지 세상에 눈돌리기보다 자기자신을 고개 숙여 들여다보고, 뚫린 가슴 너머로 바다와 달과 나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경을 읊는 어떤 사람의 눈빛처럼 무상한 무엇을 발견한다. 혹 나도 그 사람처럼 옴마니밧메홈을 외워보거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경전을 찾아 읽거나 하염없이 관음보살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조금이라도 '나는 자유!'에 다가설 수 있을까. 아니, 개심사 새벽예불을 바라보며 그 새벽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예식 속에서 저 산 아래 두고온 너무 많은 사랑과 욕심을 떠올리고 치를 떨던 나에게 그 사람의 눈빛은 내것이 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김선우, 라는 검색어로 뜨는 글들이 아직 많지 않은 세상에 기원, 기형도처럼 떠나보낸 애인을 생각하듯 가슴 아린 한권의 시집으로 남지 않도록 단 몇 권으로 남지 않도록 우리 글로라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