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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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나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에서’처럼 비참하기 짝이 없는 수용소 이야기를 ‘고발’하는 많은 문학작품이 더럽고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정치적 고발, 인간성의 승리, 등등과 같은 가치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숨그네’에는 고발도 없고 의도한 계몽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이 작품이 수용소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체 하나로 버텨내려 했다면, 그것은 노벨문학상 감이 아니라 비난받아 마땅할 일이었을 것이다. 짐승같은 치졸한 배고픈 고통스러운 비참한... 이런 단어들이 은빛 달과 아름다운 향기와 여러 가지 비유와 조어(造語)들로 승화된 이 작품이 폐허를 덮어버린 눈처럼 현실을 외면하는 이야기였다면, 아름다운 문장만큼 쓰레기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얼까, 언급하지 않는데도 피해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그래서 결국은 바로 눈 앞에 그 비참을 마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이 힘은.

수용소에서 배고파 흘리는 레오의 눈물은(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조차 궁극은 배고픔 때문이다) 너무 맑아서 다이아몬드 같다. 아니, 다이아몬드일 리가 없다.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피곤함에서 벗어나려는, 더러움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몸부림보다 더 깊은(사실은 더 바닥인)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눈물이 어찌 다이아몬드일 것인가.

불순물 하나 없이 순정하게 증류된 수증기가 얼음이 되었다. 지나치게 맑다. 너무 맑은 얼음은 분노하지 않는다. 저항도 없고 동료에 대해 잔인을 떨어댈 여지조차 없다. ‘숨그네’는 그렇게 바닥으로 내려가서 수용소의 아픔을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한 마디의 고발도 없이 수용소가 닥닥 긁어 보여준 인간성의 맨바닥을 읽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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