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 그의 사상과 진정성에 대해 경의를 표하더라도 동물농장의 음험함에는 왠지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듯 조지 오웰을 반공의 선두주자로 잘못 알고 있지 않다. 그가 매우 열렬한 사회주의자였음을 알고 있지만 스탈린을 비판한 동물농장이 잘못된 혁명노선에 대한 뼈아픈 비판으로서가 아니라 반대진영의 칼날로 인식되고 이용되는 것이 조금은 씁쓸할 뿐이었다.  

게다가 르포르타주라,  신랄하고 적나라한 현장고발의 문학을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안일한 낭만주의자적 나약함이 가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일부러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권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가능한 빨리 읽어버리리라, 하고 속독으로 읽기 시작했다. 빈민가와 광부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작년인가에 읽었던 한겨레21의 노동현장 잠입기사가 떠올랐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현장들이 있었고, 있다. 그러다가, 조지 오웰이 자신의 출신과 성장과정을 이야기하는 대목부터는 읽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래, 어찌하여 사회주의자인 그의 이력에 영국 경찰 노릇이 들어있는 걸까. 동물농장의 비판의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궁금해 하면서.

철저한 자기 반성을 바탕으로, 선택만 했다면 편안하고 안락한 부르주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그가 스스로 가장 빈한한 곳으로 내려가서, 도저히 태생적으로 버무려질 수 없는 빈민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원천은 무엇일까. 아직도 그 답은 잘 모르겠지만(지식인이 의식적인 노력만으로 그와 같은 계급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분명한 것은 그가 몸은 서재에 앉아서 입으로는 가장 앞서 나가는 진보를 이야기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당시에 손가락질 받던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파시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고하였다. 동물농장에서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닌'전체주의'였던 것이고, 그와 같은 오류의 한 흐름에 발은 붕 떠 있으면서 입으로만 외치는 허세적인 사회주의적 몸짓들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악마의 대변인'을 자처했지만 사실 21세기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존재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물론 역사적으로 매우 달라서 우리에게는 진보든 좌익이든 사회주의든, 하다못해 사이비라도 형성될 토대조차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어려운 글은 아니었고 번역이 참 좋았지만 특히 맨 뒤의 역자 해설은 읽은 내용을 간명하게 정리하도록 도와주어서 좋았다. 아무래도 처한 현실이 다르다 보니, 그래서 조지 오웰이 제시한 대안은 무엇인가, 싶었는데 해설은 그것을 지금 우리의 현실과 연관지어 잘 정리해 준다.  잘 기획된 세미나를 다녀온 느낌이 드는 독서였다.

 다음은 기억에 남는 부분 메모.. 

물론 전후에 값싼 사치가 발달한 것은 우리의 통치자들에겐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피시 앤드 칩스', 인조견 스타킹, 연어 통조림, 할인 초콜릿, 영화, 라디오, 진한 차, 축구 도박 같은 것들이 혁명을 막은 게 사실인지도 모른다.(빵과 서커스) 
 

나는 필력이 정말 뛰어난 실업자를 우연히 만나본 적이 있다. .. 그런데도 그들은 왜 자기 재능을 좀처럼 발휘하지 않는 걸까?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독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집에선 고독하기도 어렵다)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튼) 학교에서 하루는 영문학 교사가 상식시험 문제 비슷한 것을 냈는데, 그중 하나는 "살아있는 위인 중에 가장 위대한 10인을 적으시오." 였다. 우리 반에서는 열여섯 명 중 열다섯 명이 레닌을 그중 하나로 꼽았다. 이게 러시아 혁명의 공포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던 1920년에, 속물적이고 비싼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당시 학생들의 묘한 혁명적 분위기를 전하며) 

(교수형을 목격하며) 그 때 나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범인도 교수형을 언도하는 판사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국 제국경찰을 그만두면서 얻은 결론)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며 - 그들은 노동계급의 수준을 '향상'시키자고 하면서 결국 부르주와에 섞이게 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결국은 노동계급의 편견을 강화할 뿐이라 주장. 

사회주의자의 취향과 인상에 대한 비판 - 베이지색 셔츠, 샌들, 과일주스 애호가... 딱딱한 문어체, 긴 문장과 삽입구, 전문어 투성의 연설을 하는 공산주의자 연사... 

배에 기름이 찬 진보관 - 사회주의가 실현되 세계가 질서와 효율, 기계의 세계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 .

정리 - 우리가 효과적인 사회주의 정당을 출범시키지 못한다면, 이러한 여건을 바로잡거나 영국을 파시즘에서 구할 가망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의도를 가진 정당이어야 할 것이고, 행동할 수 있을 만큼 수적으로도 충분해야 할 것이다. ... 정, 반, 합은 언급하지도 말고 '계급의식'이니 '수용자에 대한 수용'이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프롤레타리아의 연대'니 하는 말은 줄이는 게 좋다.  정의와 자유, 그리고 실업자의 곤경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게 좋다. 사회적 진보니 트랙터니 드리프로 댐이니 최근에 모스크바에 문을 연 연어 통조림 공장이니 하는 얘기도 줄이는 게 좋다. 그런 것은 사회주의 사사의 핵심이 아니며 사회주의의 대의에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쫓아버리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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