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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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야학에서 강학을 1년 했다. 검정고시 야학이었지만 세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엄격하게 그게 금지되어 있었던 까닭은 그 야학이 구청인지 동사무소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주, 교무실 앞에 갱지 시험지에 색연필로 정희성이나 양성우 정호승 등의 시를 써서 붙였다. 대학생이면서도 보수적이었던 어떤 강학들은 뭐라고 하고 눈치를 주기도 했다. 위험한 시를 학생들에게 읽히지 말라면서.. 돌아보니 그 시들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와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1년을 그렇게 버텼다. 

 세계의 끝.. 에 등장하는 '함시사'가 20여 년 전의 추억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소설의 주제를 떠나서 시에 담아내는 떠난 이들에 대한 정서가 공감이 된다. 할 말은 너무 많으나 적확한 표현은 이 세상에 없고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을 때, 그 때 시들은 얼마나 위안이 되던가, 또한 같은 시를 다 달리 해석할 수 있음은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다가 비슷한 공감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그 묘한 행복감은 또 어떠한가. 사랑하는 이가 멀리 가버린 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가 여자친구이든 사랑한 제자이든 영적인 반려자이든 다 다르면서 또한 같지 않은가 

다른 작품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김연수를 좋아하지만, 나는 김연수의 장편이 더 좋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했을 후배인 그가 허명이 아닌 진가를 인정받는 유명 소설가로 성장하고 있는 게 기뻐서 가능하면 그의 작품들을 다 읽어보려 노력한다. 다만 단편은, 여운은 많이 남지만 이야기를 지나치게 함축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의 단편은 가끔 시나 잠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실 소설로서는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란 생각이다. 그의 소설은 요즘것들처럼 경망하지 않아서 좋은데 그런 묵직함을 담아내기에 단편은 너무 가벼운 그릇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김연수의 장편들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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