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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평점 :
건축 에세이를 좋아하는 내가 대형서점 입구 가판에 깔리다시피 한 이 책을 사지 않은 이유는 샘플북을 빼곤 비닐로 꽁꽁 동여놓았더란 거, 그리고 표지의 안도 표정이 너무 음습해서였다. 사실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너무 단순하고 무식하고 감정적인 이유로 선택되지 않았던 이 책이 도서관에서 발견되었기에 얼른 집어들어 왔다. 앞의 몇십 페이지만 읽고도 나는 빅토르 하라와 더불어 사지 않은 걸 후회한 책 목록에 이 책 이름을 넣어야 했다.
문장은 간결하고 잘 읽힌다.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부분조차 있다. 이것은 문장력의 문제라기보다 진짜 자기 것을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본다. 유려한 문장보다도 진정성이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것, 그래서 나나 많은 사람들은 에세이나 수기를 읽는지도 모른다. 잘 나가는 한 건축가의 회고담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초기에 대학교육조차 못 받고 스스로 헤쳐나왔던 건축의 세계는 단순한 자기자랑이 아니다. 건축을 독학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몸이 먼저 이 직업에 뛰어들고,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공부를 혼자 원서를 사서 채워가는 모습은 단순한 천재와는 다른 어떤 인생 접근법을 보여준다. 이론으로 공부하고는,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돈도 별로 없는데 세계를 돌아다니며 건축물들을 섭렵한다. 진정한 독학이다. 그러나 그 독학이 어설펐다면 아마 그의 개인적 호기심을 채우는 정도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천재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천재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보통 천재들과 다른 각고의 노력들이 더 크게 다가와서 그런 것 같다. 내 아들은 지금 고3이다. 가끔 책을 읽다가 강렬하게 우리집 아이들, 학교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것들이 발견되는데 이 책은 아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다. 지금도 가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녀석의 이부자리에 살짝 놓고 오곤 하는데 이 책은,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벌판 앞에서 살짝 어지럼증을 느낄 때 읽으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때는 이 책을 사서 줄 것이고 밑줄을 치며, 도판을 모사하며 열심히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아들은 디자인 공부를 하려 한다.)
안도의 매력은 발상의 신선함과 대범함이다. 커다란 건축물의 공간 구획을 마치 케이크를 칼로 자르듯 시원시원하게 한다. 어번 에그를 보면서 실제로 시공할 때의 어려움을 뛰어넘는 미학적 대범함을 보았고 빛의 교회나 물의 교회에서도 감성의 바닥을 읽을 줄 하는 미적 감수성에 소름이 돋았다. 옥상이나 벽, 문이나 창을 활용하는 방식은 대범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건축이 전부 내 감성에 맞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미술관 같은 데서 흔히 보던 노출 콘크리트 건축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 이게 나름 멋질 수도 있네, 그 이상을 못 느낀다. 따뜻한 재료는 아님에 틀림없다. 오히려 안도가 나무나 벽돌로 자기 발상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었을 것만 같다.
어쨌든, 그의 큼직한 발상은 참으로 부러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스케일 큰 건축가들이 정치나 돈에 흔들리지 않는 미학적 줏대와 문화사적 고집을 가지고 이 도시를 이 나라를 새롭게 변화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 그런 이들이 있음에도 내 눈에 안 보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좁은 지식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건축들은 다른 것들과의 조화나 도시 전체 마을 전체의 발전적 미학과는 동떨어져서 혼자만 튀는 것들이 많다. 대놓고 말해서, 얼마나 많은 안도의 짝퉁들이 압구정동에 헤이리에 안국동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