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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이기적인 유전자'를 읽다가 집어던진 적이 있었다(소심하게 이불 위에다 ^^;) 번역이 너무 엉망인 데 화가 났고, 그런 책이 청소년 권장 소설인 게 화가 났고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어서 화가 났었다. 결국 절반 읽고 말았다. 원서를 사 읽을까 하다가 원작에도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이 두꺼운 책에 나오는 전문적인 용어들(중고등 학교 수준의 단어도 버거운데..)을 일일이 찾아가면 읽을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
그러다가 학교 도서관에 '만들어진 신'이 들어왔길래 얼른 빌렸다. 일단 번역자를 확인하고.. 물론 다른 사람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아마 같은 계통의 학자인가 했던 것 같다. 만약 이 책이 괜찮다면 이기적인 유전자도 달리 읽어볼 요량이었고 마침 그 때 나는 예수전, 최후의 유혹, 예수 하버드에 가다 등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입맛 당기는 책이었다.
번역은 괜찮다. 흐름도 나쁘지 않다. 나는 무신론자까지는 아니지만 강요된 신앙심에 대해 몹시 회의적인 사람이었으므로 도킨스의 사고는 나와 맞서지도 않았다. 그렇게 200쪽 넘게 읽으면서 나는 좀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도킨스답게 그가 '과학적으로' 신이 없음을 입증하고 인간들이 사회심리학적으로 신이란 존재를 조작해낸 것이라는 결론을 유출하기를 바랐다. 끝까지 가면 그랬으려나.. 전부 합쳐 절반 좀 안 되게 내가 읽은 부분에서 그런 내용은 없다. 그는 강력한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비과학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 신이 왜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지를 말하지는 않았다. 이건 내가 원하는 책이 아니다.
나는 한때 신앙심을 가졌었으나(아주 어렸을 때) 현재 거의 무신론자에 가까운 범신론자이다. 초자연적인 그 무엇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도킨스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결국 당신은 유신론자이기 때문에 은연중에 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 객관적인 자세로 책을 읽을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음을, 그리고 도킨스에 대한 어떤 편견도(번역에 대해서는 좀 있었지만) 없었음을 미리 밝힌다. 오히려 호감을 갖고 출발했다. 기대마저 있었다. 예수 하버드에 가다를 참 재미나게 읽었지만 거기에서 성서의 비과학성을 언급만 했지 조목조목 밝혀내지는 않았으므로(기본적으로 그 저자는 기독교인이었으니까) 그런 궁금증도 해소해줄 줄 알았다.
혹시 뒤에 가서 그랬으려나? 그러나 200쪽 넘게 도킨스는 기독교인들을 비웃느라 바쁘다. 나는 이런 비웃는 글투가 싫다.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은 더 무섭지만 싫어할 수 없는데 그래, 너네가 얼마나 황당한 줄 아나? 하! 지난 번 그 날개 돋친 듯 팔린 기독교 책 나한테 택배로 부쳐주대? 그런다고 내 생각이 달라질 줄 알아? 뭐 이런 말투다. 싸움의 전략일까? 난 내키지 않는다. 어느 편이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논리를 지닌 쪽이라도 이런 방식으로 싸우면 마음이 싸~ 해진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과학적으로 신이 없을 것만 같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족, 논리적으로 도킨스는 그다지 성공한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책을 반납해 버렸다.
나는 책을 한 번 시작하면 무익하든 무미하든 끝을 보는 성격이다. 그런데 도킨스의 두 권은 나의독서력에 오점을 남겼다. 삼세판인데 눈 먼 시계 수리공.. 이란 책을 마지막으로 도전해 볼까. 그래도 영 아니면 내 인생에서 도킨스는 영 아닌 거다. 지구 한 모퉁이의 일개 독자의 '영 아닌' 평가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만, 내가 읽은 도킨스는 내 것이니까 나는 도도하게 점수 팍 깎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