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이 잘못 돌아가면 바로잡아야 하지만 바로잡기의 첫째 단계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게 바탕이 되어야 대안이 나온다. 물론 그 대안을 실천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실천력이 다 갖춰져야 문제는 해결이 되겠지. 우리 사회는 다 준비가 되었다가도 실천에서 가로막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잘못의 원인을 규명하고 문제를 분석하는 단계부터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우리에게 머리 좋은 인재나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이념의 트라우마는 뛰어난 지성인들이나 학자들조차도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사회의 문제를 파헤치는 일을 못하게 했다. 간혹 그것을 해낼 수 있었던 사람들(리영희 선생같은 분들)이 있었지만 매우 극소수였거나 극악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얼마 안 되는 그들도  함께 논의하고 논쟁할 동지들이 거의 없다 보니 논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자기검증 과정이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심한 경우에는스스로 권력화되면서 자기모순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순혈주의가 비뚤어진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변질되어 사회의 집단적 광증으로까지 나타나는 대한민국에서,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지성들이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넓게 통일과 민주를 이야기할지언정 민족주의 자체에 대해 논의하거나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유기체 자체의 도덕성(외부에 대한)을 건드릴만한 쟁점은 피해가기 일쑤였다. 그것을 박노자는 당당하게 건드린다. 독도나 베트남 문제, 중동 파병,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는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문제를 떳떳하게 말하지 않고 민주와 통일을 말하는 것 혹은 '대한민국의 영광된 미래'를 말하는 것은 마치 개인의도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운동과 도덕성을 논하곤 했던 과거 운동권진영의 자기모순과 닮은 듯 보인다.

박노자를 읽으면서, 한국인의 혼을 지닌 이 사람, 핏줄은 결국 우리 민족이 아니잖은가, 참 아깝다, 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역시 순혈주의의 아집에 빠진 사람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제3의 한국인이기에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만약 박노자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이었다면 아무리 천재적인 두뇌와 통찰력을 지녔더라도 대한민국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자가 러시아에서 온 사람인 것은, 아까운 일이 아니라 고마운 일인 것이다.  

 

1.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문제 많은 이 사회를 고치려는 열정이 생긴다. 그래서 노력한다... 

2.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문제가 많다. 이것은 애정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필생의 조건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성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1.이 감성적 접근이고 2.가 이성적 접근이라면 근현대사의 진보진영의 문제해결 방식은 감성 논리였고 박노자는 이성 접근이었다. (그렇다고 박노자에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후자는 드물었기에 더욱 귀하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기도 한다. 원래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비판과 성찰이 더 아픈 법이다. 그래서 박노자를 더욱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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