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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소설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지만 너무 오래 안 읽으면 마치 특정한 음식이 결핍되었을 때 느끼는 허기 같은 것을 느낀다. 딱 그럴 즈음이었는데 젊은 친구 하나가 이 책을 권한다. 사실 김중혁의 이름은 한겨레 신문에서 먼저 보았다. 그렇다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젊은 소설가들에 대한 약간의 불신감이 있었다. 재기발랄함과 엽기적인 발상을 창의력인 양 여기는 소설들이 너무 많아서 불편하다. 아무리 소설이 재미있어야 한다지만 그 안에 담아야 할 인간적인 어떤 가치들을 뭉개는 듯한 무분별한 상상력들의 난무, 혹은 인간주의에 대한 냉소 등은 싫다. 젊은 소설가들이 다 그럴 리야 없지만 계기가 없으면 좋은 소설가들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빌려주겠노라는 동료(후배? - 교사는 뭐 - 선후배, 상사, 이런 개념이 없으니까)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역시나 메시지나 의미 같은 것이 가슴을 묵지근하게 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고 음악은 내가 깊이 들여다보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예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 그 즈음을 내내 가슴에 그 이야기로 사는 그런 증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 참 신선하고 괜찮네,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소설이라면 이런 작가라면 책을 빌리지 않고 사서 보아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다음엔 김중혁씨, 당신 소설을 구입하겠소. ^^)
엽기적인 이야기들이 아니라서 좋았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내가 모르는 영역(디제잉같은)임에도 불구하고 뭐 특별한 사건 전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라서 신기했다. 매뉴얼 제너레이션은 특히 내가 아주 싫어하는 매뉴얼북(난 매뉴얼을 읽지 않고 기계를 만지작거려 체화시키는 것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인데)을 소재로 이토록 신선한 발상을 하다니?! 아니, 베르베르의 단편 중에 우주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 하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MP3 플레이어를 지구에(오르골로부터) 연결하는 발상이 좋았다. 거기에 별 특별한 사연이 얽히지 않았음에 뒤로 갈수록 어?어?어?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여자 - 고신희 씨, 사장-와 화자가 진부한 남녀관계로 얽히지 않는 것도 좋았다.
엇박자D의 공연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주로 수업이나 연수를 기획해 보았을 뿐이지만 규모가 크든 작든, 보고 들을 사람을 대상으로 그 사람들을 좌악 이끌어 함께 시간을 이끌어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기획된 공연, 강연, 수업, 프로젝트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잘 알 것이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이대로만 된다면 보게 될 관객들의 놀라는 반응, 찬사, 함께 한 마음이 되었을 때의 벅찬 공동체 의식 들을 상상하며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준비를 거듭거듭 하면서 그런 감동적 상상이 점점 실체를 가져간다는 느낌이 온다. 현장에서 관객들의 그 눈동자, 숨죽인 집약을 경험하는 순간의 희열은 어떠한가.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연 장면을 상상했다. 음악도 없이 음치들의 생음으로 조합된 노래 한 곡이 주는 날것의 겸허한 감동을 현장에 있는 듯 실감했다. 딱 한 번 가보았던 EBS 스페이스 공연장을 연상하면서 나는 마치 콘서트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학창시절의 아픈 추억을 간직한 엇박자D의 회한이나 뭐 이런 종류의 무거운 주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다.
이 작가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죽 지켜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그의 소설도 달라질 것이고 그것은 분명 좋은 방향이길 바란다. 지금의 착한 발랄함에 철학과 무게가 더해진 멋진 방향일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