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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어떤 신임교사와 각별히 친하게 지내던 한 교사에게, 왜 그 사람과 그토록 친해졌는가 물으니(그이는 사람 사귀기를 꺼려하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박노자를 알더라는 게 이유였다. 이런 이야기가 교사들 혹은 우리학교 교사들을 욕먹이는 부끄러운 에피소드이려나? 하지만, 우리학교에서 박노자를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노자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내 맘에 가까운 동료와 아닌 이로 구분을 짓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물론 나와 함께 박노자 팬인 동료와 말이다.) 나와 그는 박노자의 저작들을 거의 다 읽었으며 어떤 시사적 사건이 발발할 때 박노자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동료에게는 아나키스트적인 요소가 좀 있지만 박노자처럼 사회주의적 성향은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논쟁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면 그의 그런 부분을 좀 걸었을지도 모르겠다.(넌 왜 ..도 아니면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말해봐!) 하지만 나는 그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그는 생각은 많으나 현실적인 사람이기에 박노자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정서적인 부분이 강하다고 본다. 공감의 영역이 막연한들 어떠랴. 박노자는 체계적이고 독자인 우리들은 두루뭉술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이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이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한다. 아니, 나는 동료와 술자리에서나 중구난방으로 할 말들을 그는 당당하게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근거를 (그것도 매우 해박한 지식들에 기반한 근거~!) 대가며 공식적인 저서를 통해 하고 있지 않은가!
박노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일관성, 논리성, 적확성 뿐 아니라 그의 필력에도 있다.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대단한 필력. 누구는 그를 천재라고 했다. 나는 그의 '쉽게 읽히는 글이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자고 추천했는데,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보수적인 중년교사 한 사람은 그를 불편해했고 20대의 젊은 친구들(나는 그들이 좀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는데)은 이 책을 어려워했다. 물론 절반의 사람들은 이미 박노자를 알고 있었고 이 책을 흥미있게 읽었다고 했지만 말이다. 나는 젊은 남자교사들의 반응에 매우 놀랐고 조금 절망했다.(실망했다, 고 써야 맞는 건데, 사실은... 그런데...)
비판하지 않는 젊은 지성에 대한 실망이고 절망이었지만 아니다, 저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어쩌면 이 책은 일기였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사와의 접점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 역사 이야기같은, 우리가 별로 관심 없어했던 부분들은 재미없을 수도 있었다.(나도 좀 그랬다.) ...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책이 일기형식으로 글의 길이가 짧아서 쉽게 읽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이전의 책들보다 더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박노자의 자아를 드러내는 대목에서 조금 놀라기도 했던 것 같다. 자신이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 없는 이유 따위의 이야기들. 자기를 숨기고 쿨하게 글을 쓸 때 한없이 멋지기만 했던 그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니 조금은 변명처럼 들리기도 해서 마음이 좀 아렸다고나 할까(물론 나도 박노자 교수가 현실정치에 절대로 관여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지금은 그의 신간 왼쪽으로..를 읽고 있다. (그 동료와 함께.. ^^) 한국 태생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거침없는 '왼쪽'의 발언들을 책 속에서 확인하면서 나는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이 정권이 그를 건드리면 어쩌나, 하는. 하지만 누구는 또 그런다. 그는 대한민국의 어떤 인맥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도 얽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그를 건드릴 이유가 없다고. 그래도 그의 영향력이 위험하다고 느껴지만 한 번 손보려 덤비지나 않을까... 라고 말하자 그를 건드려서 얻는 효과가 없을 것이므로(잘못 건드려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언정)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한다. 미네르바처럼 괘씸하여 한 번 눌러줘야 할 그런 정치적 목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계산이 잘 되지 않아 내 마음의 불안이 가시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가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에게 쓰게 들리는 소리를 한다고 하여 , 젊은이들의(심지어는 나같은 중년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다고 하여 그를 어떻게 한 번 혼내보려는 시도 따위는 아예 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백혈구같은 이가 박노자이다. 염증이 너무 심해 그 한 사람이 버거워 보이는 게 슬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