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교단일기 - 살구꽃이 피는 학교에서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8
김용택 지음 / 김영사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싸웠다.

싸움을 하고 나면 내가 벌레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싸우고 싶지 않다.
싸우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네, 알겠습니다,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견딜 수 없어서 꼭 싸우고 만다.
 

교과부에서 내려왔다는 학습보조교사들의 자리가 없어서 상담실에 그들을 앉히겠다고 교장이 말씀한다. 그럼 상담은 어디서 하느냐고 물으니 꼭 상담실에서 해야 하느냐, 수시로(아무 데서나) 왜 상담을 못 하느냐, 상담실 불은 (늘) 꺼져 있던데 그 공간을 쓰면 뭐 어떠냐, 상담실이 아예 없는 학교도 많다, 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싸웠다.
 

지금 고2인 제자 성현이가 자기 졸업식날인가에 내게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내게 책 선물을 준 녀석들이 참 좋다. 많은 아이들이 ‘국어 선생님한테 책 선물 하기가 쫌 그래서... ’‘ 선생님이 이미 읽으셨을지 모를 책이지 않을까 싶어서...’‘선생님께 이런 시시한 책 선물하기가 부끄러워서’ 라는 핑계를 대면서 책 선물하는 것을 쑥스러워한다. 그런 가운데 내게 책을 선물하는 녀석들은 순수하고 당당하다. 그 책이 내가 읽은 책이면 어떠랴. 나의 취향과 거리가 멀면 어떠랴, 나의 수준을 잘 모르는 것이면 어떠랴.  성현이는, 교과서에서 배운 김용택 선생님이 좋았다고 하면서 이 책을 주었다. 내게는, 당신도 이런 선생이 되라, 그런 의미도 담고 주었다고 생각해서 감사하며 받았다. 
 

그 책을 아껴아껴 읽고 있다. 세상에, 이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 있을까. 맘 먹고 읽었다면 한두 시간이면 다 읽고 말았을 책이다. 그러나 내가 소중히 여겨 아껴 읽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일부러 드문드문 읽는다.
오늘 그 책을 다시 읽는데 난 방학을 마치고 돌아간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서거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기에 대한 잔상과 더불어 이 평온하다면 평온할 수도 있는 책을 참으로 심란하게 읽는다.
 

김대중의 일기와 김용택의 일기는 

김전대통령의 일기를 읽으며 김용택 선생의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두 분은 말과 글로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들은 김전대통령이 말을(연설을) 참 잘한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김용택 선생도 시낭송회 따위에서 가끔 뵈어도 어눌하고 소박하다. 글은 또 어떤가. 그들의 글은 참 짧다. 특히 일기들은 참으로 간결하고 단순하다. 순수하다. 그래서 감동적인지도 모른다. 거짓이 없다. 그 짧은, 앞뒤 없는 일기에 거짓을 실었다면 대단한 소설가였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지금의 자신이 행복하다고, 지금까지 잘 살아 왔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살해위협과 가택연금과 사형언도를 겪었고, 교감 교장 안 되고 섬진강가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명퇴하였던 그들이, 자기가 잘 살아왔다고, 이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건 참으로 따뜻한 자부심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잘 살았다가 아니고 20세기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시인이고 명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열심히 살았기에 자기 삶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아내를 볼수록 경이로운 사람이라고,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감히 아내를 존경한다고, 내게 없는 빛나는 부분을 가진 사람이라고, 지금 이 나이에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들은 벨도 없는 한국남자라서 그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 사람들이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존경을 표할지라도 내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나 아내인 당신도 내게 고개 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인생을 함께 걸어온 동지로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그는 잘디잔 선생이었다, 아름다운...

어쩌면 김용택 선생은 자기를 갈고 닦아 뛰어난 교수법을 구사하는 노련하고 유창한 교사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아주 품이 커서 아이들이 어떤 짓을 해도 품에 품고 허허 웃을 수 있는 산신령 같은 교사가 아니라 쪼잔하게 파리채로 손바닥도 한 대 때리고 버럭 화도 내고 구구단 하나 제대로 못 가르쳤던 그런 교사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내가 얼마나 유명한 시인인데, 잉? 이런 태도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나쁜 교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구구단을 더 쌈박하게 외게 하는 스킬이 아니라 구구단을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보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키 작은 시골선생이 푸근한 눈빛으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너희들의 생동을 너무나 사랑하는 내가 여기 있고 저 미친 세상에서 너희를 지켜주고 싶어 안달도 나고 속도 상하고 눈물도 잘 흘리는 동네 할배같은 선생이 너희를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는 당신같은 교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일기 문장은 짧고 단순하다. 꼭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일기처럼 간결하다. 오늘 아이들이 예뻤다 나무도 예뻤다 아이들이 말 안 들었다 속상했다... 그런 내용인데 감동이 온다. 단순하고 맑아서 감동이 온다. 거짓이 아니기에 감동이 온다. 거짓으로 꾸며 쓴 것 아니냐고? 교단에 서서 아이들 눈동자를 보아온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글이 거짓인지 아닌지 안다.
 

그러나 김용택이 좋은 진짜 이유는, 그가 이토록 자연과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 순수에 매몰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부조리한 학교와 교육 제도에 맞서 싸운다. 싸움의 강도는 논하지 말자. 그는 포크레인의 삽질에 맞서 싸운다. 그 싸움이 얼마나 효능있고 힘있는지는 논하지 말자. 그는 얼마든지 눈 감을 수 있고 좋은 게 좋은 거로 살 수 있을 만큼 나이 먹었고 너무나 많은 강연회를 다니면서 출판인이며 사회 유명인사들을 만나고 많은 책들을 출판했고 그것들을 팔면서 살아왔다. 왜, 세상물정을 모를 리 있나? 사람들 속성, 그들과 어우러지는 법, 유능한 척 하는 법을 모를 리 있나? 그런데 그는 아직도 분개하고 싸운다.

또 있다. 자기가 이름난 데 걸맞게 점잖은 척하려면 아이들이 좀 떠들고 공부 못해도 옹송거리면 안 된다. 그런데 그는 옹송거린다. “선생은 잘다는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다. 나는 날마다 아이들에게 바로 앉아라, 연필을 왜 그렇게 쥐냐, 기역자가 그게 뭐냐... 가르친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고 말한다. 나는 이보다 더 강렬한, 선생으로서의 자기 긍정을 들어본 적 없다. 나도 교사가 된 것을 축복이라 여기고 정말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교사가 되어 나는 자꾸 쪼잔해지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니다. 작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종알종알 잔소리 해대는 시골 선생은 자기 잔소리를 놓고 “하루의 생이 이 아니 아름답”냐고 역설한다!

외로운 청년의 푸른 어깨끈 

오늘 아침, 학생상담이 별로 의미도 없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활동인 양 취급하는 교장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고 언성을 높이고 그 앞에서 또 싸우고 만 나 자신은 저들과 똑같은 벌레가 된 것 같은 자괴감에 하루를 시달렸다. 그런데, 아니다. 내가 내 영혼을 더럽히지 않으려, 나도 원만한 사람이란 걸 보여주려 침묵했거나 네, 했으면 난 버러지 기분은 아니 들더라도 버러지 대열에 동참했을 것이다.

“나는 고립의 아름다움과 고립의 두려움을 모르는 채 진실의 힘을 믿고 오랜 시간 홀로 살았다. 아득한 저쪽 외로운 청년의 푸른 어깨끈을 나는 아직 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는 연약하게도, 싸우고 나서도 저들의 잘못도 내 잘못인 양 여기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김용택 선생과 같은 방향을 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그의 교단일기는 참으로 따뜻하고,                             ......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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