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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가 심상치는 않았지만 한편 유럽식 마법 이야기를 우리 청소년 소설에 어찌 버무렸을까 어설프지 않을까 의심도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공포스럽고 엽기적인 작품들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것이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 시작 부분의 빵집에서 나누는 대사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엽기스러운 척? 웬 위악? 해리포터의 아류? 뭐 이런 기분..
하필 그 서늘한 영화를 보러 간 날 읽은 이 책
어제, 루마니아 영화 '사일런트 웨딩'을 보러 안국동에 가면서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가는 내내, 이러다가 내가 정거장을 놓치면 어쩌나, 무지하게 신경을 쓰면서 읽어야 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푹 빠져들게 재미있었다. 저주를 걸 수 있는 쿠키라든지 커다란 가마솥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법사의 약물(그냥 물?)이라든지 낮에는 소녀로 변신하는 파랑새라든지, 얼핏 보면 해리포터 흉내를 냈을 법한 장치들의 유치함이 다 상쇄될 만큼, 주인공 소년이 겪는 고통은 현실 속에 가능하고도 남을 만한 이야기들이고 그것과 마법의 세계가 얽히는 과정은 이상하게도 자연스럽다.
책을 4분의 1쯤 남기고 안국동에 도착해서 영화를 보았다. 조금은 코미디에 가까울 줄 알았던 영화는(도대체 세상에서 제일 유쾌한 결혼식이라는 둥 웃길 것처럼 광고한 거나 그렇게 영화 리뷰를 쓰는 사람들은 뭐냐 투덜투덜..) 너무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 때문에 가슴이 서늘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어두워진 길목은 아름답긴 했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는데.. 하필 곧 지하철에 올라타서 마저 읽은 위저드 베이커리는 주인공 아이가 몽마에 시달리는 장면, 엄마의 마지막을 꿈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나의 밤을 뒤척이게 한 아픈 소설
나, 기가 약한가 보다. 상처받은 사람들, 피해갈 수 없는 잔인한 운명들로 잠자리까지 가슴이 아팠다. 무거웠다가 맞는 표현이리라.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고 처음부터 킥킥거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난 마지막 장면을 예감하고 있었다. 소설은 제목처럼 기괴함을 재미있는 장치로 삼을 게 뻔하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난 이 두, 너무나 재미있고 너무나 공포스럽고도 잘 만들어진, 전혀 아무 관계도 없는 작품들의 무게를 동시에 느끼면 밤을 뒤척였다.
'위저드 베이커리'는사람들이 무겁거나 가볍거나 성장과정에서 한 번쯤 품을 수밖에 없는 비밀스러움, 공포, 꿈의 시달림을 다루어서 독자의 경험을 반추하게 한다. 경험의 끔찍함에는 객관성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에게는 하다 못해 만화책을 읽고 얻은 충격조차도 무거운 법이다. 또한 어린 날 품어보았던 유치하기 짝이 없으나 세계 공통이라 할 만한 환상들(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미워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우리 집 강아지가 사실은 밤마다 변신을 한다면 같은)을 적절하게 소설적 장치로 써낸 것 또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다. 마치 원형처럼, (꼭 유럽식 마법사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성장기를 건드리는 갈망이 아닌가.
성장기, 공포와 비밀의 기억
건드려진 것은 환상만이 아니다. 죄의식은 아니던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음에 대한 공포와 부모를 포함하여 미워하는 이의 불행이나 죽음을 갈망한 것에 대한 죄의식, 자기 인생을 잘 펼쳐내지 못한 것에 대한 열패감, 이 모든 것이 사춘기를 끔찍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면서도 건너올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걸 건드리고 말로 끄집어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나 사실 사춘기때 나의 라이벌이었던 그 애가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갈망했었어, 나 사실은 어렸을 때 저러다 엄마가 죽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웠었어, 이런 이야기는 다 지나고 난 후에도 차마 꺼내지지 않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걸 건드렸다. 이 소설은.
어쨌든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 삶의 무게가
위선도 없지만 함부로 위악을 떨지 않는 것도 미덕이다. 어쨌든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할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아무리 지독한 경험을 한 청춘일지라도 자기 삶에 새 살을 돋게 할 생명의 의무, 삶의 의무를 너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물론 반가운 마음과 따뜻한 기억으로,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양육과 보호과 격려의 따뜻함을 부모 대신해 준 공간으로 다시 달려가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