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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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고 싶어 한다. 떠나 살고 싶어도 하고, 공부하러 나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한 번 다녀온 사람은 해마다 몸살을 하곤 한다. 한 번도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도 늘 꿈을 꾼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누구는 이것을 집단적 허영이라고 욕했지만 한 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 없던 그도 짧은 필리핀 여행과 신혼여행 이후로 달라졌다. 허영의 대열에 동참한 것일까?
  

해외여행을 허영의 산물이라고만 보기에는... 

물론 한국에서 외국경험은 그의 경제적 지위와 문화적 세련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과시하려고 외국을 꿈꾸는 면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
뭔가가 더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억눌림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하고 일종의 백일몽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꿈을 꾸고 싶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걸어다니면서 꿈들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을 잠시나마 실현해 본 사람은 더욱,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간절히.

외국여행을 가면 모두 와인잔을 기울이며 상젤리제 거리의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가? 근사한 궁궐 뜨락을 거니는가? 굽 낮은 샌들을 끌고 무거운 배낭에 짓눌려 피곤에 절어 배고픔에 치여, 백인들의 무심과 경멸에 속상해 하루 예산의 계산에 골머리 아파하며 그렇게들 다니지 않는가? 유학을 가서 이민을 가서는 또 안 그런가? 다녀와서 추억으로 남거나 내 삶이 어땠는지 모르는 친구들 앞에서 똥폼을 잡을지언정, 그들 앞에서 폼 잡으려고 외국에 다녀오고 싶어하는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여행은, 이곳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갈망은, 사람들 속에 숨은 일종의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천 년 동안 억눌린 원형적인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최근에 급격히 터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갑자기 배가 부른 것이 아니라 갑자기 잊혀졌던 꿈에서 각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꿈을 꾸면서 현실을 이겨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석을 하지 않으면 갑자기 드넓은 세상으로 열리는 이 가슴, 가슴들을 설명하기란 참 어렵다.
  

나도 그런 갈망의 하나로 여행기를 즐겨 읽는다. 요즘 많이 나오는 가비얍은 여행기도 좋고 사진 혹은 스케치 식의 그것들도 좋다. ‘도시의 기억’도 그 맥락에서 손에 쥔 책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덧붙여, 고종석이란 이름 때문에 샀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라면 좀 다른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런 기대와, 고종석의 필력과 우리말을 다루는 솜씨를 함께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함께.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여행을 맞는다

맞다. 예술가는 예술가다운 여행을 할 것이고 나 같은 선생들은 선생의 시각으로 세상을 읽을 것이다. 김석철 씨가 건축물을 찾아다닌 책을 읽으면서 어차피 세상 모두를 다 볼 수 없을 때, 자기만의 프리즘을 갖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생각했었다. 기자가 본 세상은 어떨까. 고종석 씨는 기자로서 넘나들었던 ‘도시’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다. 취재를 위해 다녔던 (대개는 선진국의) 도시들은 분명 범부들의 여행기와 달리 읽힌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고 들은 것 이외에 그 지역에 대한 이러저런 지식들을 더 찾아내 곁들이곤 하는 것이야 비슷비슷하지만(일종에 독자들에 대한 노력의 모습이겠지) 기자로서 돌아본 세상 이야기는 좀더 지적이고 깊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기 담긴 경험은 주로 다른 나라 기자들과 취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글은, 묘하게 감성적이면서 묘하게 객관적인 냄새를 풍긴다. 놀라운 것은 정치성이 거의 거세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주 그런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겨레 신문에서 고종석을 알게 된 나로서는 지나칠 정도로 배제된 정치적 발언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개인적이고 ‘몽환적’(저자가 좋아하는 단어다)이고 예술적인 글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감성은 좋지만 예술적이라기엔 역시 기자였다. 저자는 일종의 ‘자유영혼’ 파임에는 분명한데 (그가 일 때문에 도시를 전전했다 하더라도 소위 역마살이 끼지 않고서야 그렇다 다닐 운명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기에는 지나치게 소심하기도 (혹시 겸손한 것일까) 또 안정적이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만히 보면 참 기자스럽다. 아, 물론 기자스럽다고 하기에는 그는 참 겸손한 사람이다. 아는 것이 많고 가진 능력(글솜씨나 여러 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 그리고 글에 언급되지 않은 기자로서의 취재능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자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묘하게 감성적이지만 묘하게 객관적인 

내가 다녀 본 곳에 대한 부분은 반갑게 읽었지만 사실 관광객으로서 나의 기억과 취재기자로서의 기억의 접점은 별로 없다. 몽환의 여행기를 읽는다기보다 살짝 공부 무게를 실어 읽었다. 그러나 저자 자신에게는 자신의 열정적 시대의 일기장을 다시 읽듯 새삼스러울지는 모르겠으나 독자인 나에게 충분한 ‘사유’들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그 도시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많이 유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랬을까.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정할 부분들(홀로코스트처럼, 거의 고전이 된 사회정치적 사건들)을 빼고는 언급을 회피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보통 여행기보다 무게감도 있고 가비얍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 여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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