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화가가 되신 스승이 있다.  제주도의 화가 강요배 선생님이다.  내 고교시절 내내 미술을 가르치셨던 그분은 졸업 후 얼마 안 있다가 전업화가가 되셨고 12월 동인전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내 마음 속에는 내내 선생님의 그림 한 점 갖는  소원이 있다. 그러나 가난한 교사의 주머니로 작은 그림 한 점 갖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게다가 강선생님은 제주도의 대자연을 담는 대작을 주로 그리신다. 

그런 마음의 미진함이, 이름없는 화가의 것이라도, 작은 것이라도 그림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갈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느 날 인사동에 남편과 나갔다가 김점선의 그림을 보았다. 두 마리의 흰 말이 서로 어우러지는 그림이다. 말들의 표정은 따스하지만 파란 바탕의 희디 흰 말은 맑고 서늘하다. 우리는 그 판화를 샀다. 그림치고 많이 비싼 건 아니었지만 우리에겐 호사였다. 이렇게라도 조금씩 그림들을 갖고 싶었다. 아직은  무명화가인 친구가 우리 결혼할 때 선물로 준 최병수의 '분단인' 판화와 참 어울리지 않아서 서로 멀찍하니 떨어뜨려 벽에 걸고 볼 때마다 흐믓해 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김점선 씨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손으로 벌어서 산 최초의 진짜 그림의 화가가 돌아갔다니 참 이상한 기분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그분이 우리에게 그림 선물을 주고 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도서관에 빳빳한 새책으로 들어온 점선뎐을 작은 아이 시험공부할 때 같이 밤을 지새며 다 읽었다. 전인권? 한대수? 그런 이들을 만날 때의 그 느낌, 자유영혼의 냄새랄지, 생각의 틀을 잘 따라 걸으며 살아온 내 안에 숨겨진 자유영혼의 열망을 그들은 나 대신 살았을 것이다. 그것에는 어떤 이론이 없고 이데올로기가 없다. 그래서 특히 김점선 씨에게서는 어떤 사회성이 읽히지 않는다. 그의 예쁘기 짝이 없는 그림은 그래서인지 그의 자유분방한 행적과 좀 어울리지 않는 듯도 싶지만 한 편, 싸움도 잘하지만 먼 여행을 즐기지 않고 주로 자기 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그의 내면에는 분방함 이상의 두려움 같은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 손으로 머리칼을 잘라내고 아무렇게나 입고 사는 듯 했던 그 사람의 외향성 뒤에는 자기 안으로 한없이 스며들고 스며들어 책읽고 그림그리는 인간의 내향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강한 듯 보였지만 한없이 여린 이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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