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에 걸린 분옥이와 그녀를 사랑하는 동준이 이야기는 두세 번을 읽어도 눈물이 난다. 세상끝에 오두마니 홀로 놓여진 분옥이의 초라한 섬돌에 동준이 놓고 간 짚신이며 갈대비며, 동냥으로 모은 돈으로 사온 어여쁜 얼레빗, 그리고 저녁마다 들려주는 피리소리.. 그렇게 사랑을 전할 줄 아는 사람 몇 없는 지금 세상에ㅡ 그런 사랑 받을 수 있다면 아파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살다가 동준이 품에서 죽어간 분옥이는 서럽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까...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군더더기 많이 달려 자아에 침잠하다 못해 자기도 모를 소리로 헤매고 다니는 요즈음의 소설과 달리 참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급히 좌절하기도 하고 곰실곰실 살림을 모아 다독거리며 잘 살아가기도 하고... 그 이야기의 진행이 어쩐지 동화처럼 뿌듯하기도 하고 전설처럼 아득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나같이 할머니에게 고모에게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아직도 이산가족 모이는 자리에 가면 소설이나 동화, 아니 전설보다 더 기막힌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권정생님의 영혼은 특별히 작고 연약하다. 그래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지 모른다. 따뜻하다. 하나님이 그러라고 그분을 그리도 아프게 하셨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