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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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수많은 미술평론, 미학 에세이를 쌓아놓고 즐겨 읽는 편이지만 돌이켜보면 이 책이야말로 나의 첫번째 미술교양서적이었지 싶다. 3500원짜리 창비교양문고 20번.
무슨 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술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흠뻑 충전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것을 읽을 무렵인 80년대, 아마도 나의 대학시절, 지은이의 형인 서승, 서준식 씨들이 간간히 신문에 나던 때였다. 분단의 희생양인 그들, 그 형들을 지켜보아야 했던 동생이 선택한 것은 엉뚱하게도 미술관 순례였다.

글 서두에 부모를 잃고 낙심해 있는 누나와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올까 했던 계기가 적혀있다. 부모를 잃고 형들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유럽여행을? 투쟁이 능사인 시대에 그의 행보가 낯설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비교거리를 가지지 못했던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만 숱한 '유럽미술관'과 '서양미술'에 대한 에세이가 난무하는 요즘의 온갖 책들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이 글이 눈물로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 눈에 들어오는 그림은 아무래도 남다를 터이다.

어떤 그림을 선택하는가, 어떤 음악을 골라 듣는가, 어떤 시를... 그것이 어찌 그 사람의 삶을 빗겨 랴. 서경식씨가 눈여겨 본 그림들은 한결같이 아프다. 의혹이 있다. 미지의 것을 찾아가고, 고통스럽고, 어떤 벗어나기 힘든 운명의 힘에 매여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려 몸부림친다. 끊임없이 형들을 떠올리는 이 '서양미술 순례'도중 그는 고야의 '모래에 묻히는 개'라는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물론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는 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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