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학교
이윤기 지음, 북디자인 정병규, 정재규 그림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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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가 소설도 쓰는 줄은 몰랐었다. 그저 그의 <장미의 이름>을 읽고 번역도 이정도면 예술이 되는구나, 하고 감탄했을 뿐이다. 어디선가 이윤기의 단편소설이 실린 것을 보고, 그래, 그 정도의 감각과 글솜씨를 지니고는 단지 남의 글을 갈아엎는 것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다, 그가 소설을 쓰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싶었다. 이윤기의 소설에 대해서는 내 취향과 얽힌 평가를 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의 소설보다 이 책 속의 수필들이 더 마음에 남았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수필이 좋은 건 대개는 소설 못지 않은 삶의 '스토리'들이 담겨있고 - 소설의 그 뼁끼칠, 자기를 감추려 몸부림치는 위선 혹은 위악, 가장된 겸손의 그것이 없다 - 헷갈리지 않게 글쓴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통으로든 반면으로든 뭔가를 깨닫게 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윤기의 수필도 이윤기 냄새가 난다. 어떻게 살았을지 짐작케 하는데, 아마도 성공한 글쟁이의 향기가 어느 정도 배인, 나름대로 탐탁한 인간관계와 자기만의 멋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그런 사람일 것 같다.

배우 김명곤에 대한 글에서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특징이 있더라. 자기 하는 일에 깨어 있더라는 것이다. 저금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에게는 못 당한다는 옛말이 있다'라고 그가 했다는 말이 인용된다. 이 말을 그 후 숱하게, 특히 아이들에게 써먹었다. 김명곤이 얼마나 성공한 사람인지 그 평가는 접어두고라도 열심히 산 사람이기에 그 말이 더 실하게 들릴 뿐 아니라 그걸 이윤기가 옮겼기에 더욱 공감된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도 전문적 직업이라 생각한다. 아무나 우연히 시작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됨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그래서 나 역시 내 안으로 저금하고 공부하며 살려 몸부림친다.

또한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자의 분위기가 솔솔 풍긴다. 물론 난 노자를 잘 알아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윤기가 얼마나 노자에 통달했는지를 평가할 주제는 못된다. 그러나 가령 이런 것, 그의 글 중 흥이 당기면 담배를 피워도 그만, 평소에 안 피워도 집착이 없는 지인 이야기가 나온다. 술이나 담배나 책이나 사람이나,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는 경지를 알고 살기란 쉽지 않다.

나에게 담배는 나를 얽어매는 그 무엇도 되지 않아 즐길 수도 버릴 수도 있겠지만 가령 술이나 책이나 사람은 그렇지 못해 그 강한 집착에 스스로 얼마나 상처받는가... 노자를 읽어서 술의 집착을 벗을 수 있는 것은 아닌 줄 알지만 그래도 이런 글들로 위안을 삼아본다. 어딘가 담배를 즐기되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더라, 내게도 그런 경지가 어느 순간 다가오겠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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