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저녁 - 개정판 민음의 시 56
유하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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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라는 사람을 잘 모르지만, 시를 통해서 본 그 사람은 그야말로 내 스타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는 재치만 창천한 사람일지도 모르겠고 쉽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기 감정에 빠져 잘 허우적거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또 쉽게 식어버리고 잊어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사랑을 앓는 순간에 썼던 시를 거듭 읽으며 자기도취에도 쉽게 빠진다.

이것이 내가 유하의 시들을 몽땅 사들이면서 받은 그 사람에 대한 추측들이다. 번연히 내가 좋아할만한(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과 저자의 인격이 일치하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의 시를 다 사모으는 일이, 마치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는 남자에 매혹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일과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가슴아플때 그의 '사랑의 지옥' 따위의 시들을 다시 한 번 수첩에 옮겨적어보곤 한다. '바람 한 톨, 잎새 하나에도 주술이 깃들고(너무 오랜 기다림)''세상의 모든 저녁' 따위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귀절이나 제목들은 그의 재치의 소산인지, 그가 다른 이들의 공감대를 읽어내고 말로 이르는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 나의 감정선이 매우 얄팍한 건지... 하여간 그의 시를 때론 사춘기때 불렀던 노래처럼 자주 읊어본다. 그래도 영화를 만드는 그는 배신을 때리고 돌아서는 연인의 뒷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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