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속의 검은항아리
김소진 지음 / 강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신문에서 그를 애도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에게 내린 소박한 찬사들과 아쉬움을 만나면서,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내가 즐겨읽는 소설적 취향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현실적 가치관은 김소진의 소설을 값있게 읽으리라 싶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그의 책을 샀다.

또 그로부터 한참 후, 그의 책을 읽었다. 먼 나라 여행을 위해 비행기 안에서 '가벼이' 읽으리라 가져가서는. 물론 그의 소설은 어렵지도 않았고 단편들이어서 부담없이 읽었다. 떠난 문인들을 떠 올릴 때마다 그가 오래 살아 있어 더 많은 작품을 썼다면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 본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습작기에 흥분상태에서, 작가가 그 작품 속 세상을 고스란히 살면서 쓴 것들 같다. 원숙한 작가들이 침착하게 글을 쓰는 그 매끄러움, 그 뻔뻔스러움과는 다른 날것의 느낌이 있다. 그가 더 살았다면 더 매끄러운 작품들을 썼을 것인지..

이상하게도 나는 간접적으로 겪었던 70년대 한옥 주택가의 골목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혹은 달동네... '신풍근 배커리 략사'가 좋았던 것은 '그래 정말 맞아!' 소리가 절로 나게 서울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보았음직한 신풍근씨 빵집의 풍경과 정취 때문이었다. 자신의 일대기를 조금 쑥스럽게 서술하는 신풍근씨를 통해 작가가 우리나라 근대사, 민중의 고난사를 말하려고 했다면 그건 좀 미약했을지도 모르겠다. 신풍근 할아버진 그의 어수룩한 캐릭터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매우 신념에 찬 인물이 되었다가 인생에 한없이 너그러운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나름대로 분석적으로도 되었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작가가 주제에 대해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설정인가, 궁금하다.

울프강의 세월을 읽으면서는, 대학 때 만났던 인물들 몇이 떠올라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울프강처럼, 이 땅 어디선가 근거를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작가는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나는, 어느 시대나 그렇게 허랑허랑 때로는 치졸하게, 거짓으로라도 온갖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슬픈 영혼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건 어쩜 바람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김소진은 내 두세 살 윗 연배로 아마도 어린 시절에 비슷한 풍경들을 보고 청년 시절 비슷한 고민들을 하며 이땅을 살았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은 너무 다양한 실험으로 인해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단점이 그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것이 그의 작품을 풋풋하게 느끼게 하니까. 뻔뻔스럽지 않으니까. 소박하고 고소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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