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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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자신의 여행을 학문적으로 분석했다면, 그리하여 국제 정세와 정치와 문화에 대해 남의 말들을 잔뜩 인용하며 잘난 척을 했다면, 그 사람이 통속적인 관점으로 일도 가정도 연애도 완전히 성공한 여자였다면, 그 사람이 무지하게 미녀라서 짙은 화장을 하고 자기 책들의 광고사진에 등장했다면, 기똥차게 좋은 머리를 타고난 수재였다면, 아니, 그 사람이 보수주의자였거나 특정한 종교의 아집에서 헤매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 이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리 입담이 좋은 재미있는 책을 썼더라도 그 사람이 쓴 책을 다 찾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부심과 자만심을 헷갈리지 않고 있는 그 사람은 글과 생활이 따로 놀지 않는 사람 같다. 사는 모습을 고스란히 글로 보여주어, 억지로 겸손을 떨지도 않고 다소곳이 순하게 사는 척 하며 온갖 비열과 교만을 다 떠는 글쟁이들과도 다른 것 같다. 그러나 벌써 꽤 여러 권 나온 책에서 본 모습 말고도 더, 또, 다른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 그의 글을 읽는 사람, 주변의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잘났으니까 너도 나를 따라하라, 그런 이끎이나 교육이 아닌, 힘을 주는 사람.

나는 교단에서 종종 그 사람의 글을 수업의 자료로 쓴다. 세상을 바라보는, 문화와 정치와 사회를 재고 판단하는 그 사람의 시각은 일관성이 있고 건강하다. 여행을 많이 다녀서 살아있는 체험으로 얻은 성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자기 생활을 관리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모습에서 내가 닮고 싶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전인적인 모습을 본다. 뛰어나기 때문이 아닌, 어느 한 구석이 뛰어나지만 어느 한 구석이 이지러진 그런 모습이 아닌 둥글고 온전한, 전인간적인 모습.

93년에 다녀온 베이징의 기억을 되살이면서 이 책이 좋았고 여행 혹은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에 기름부은 듯한 같이 달뜨는 그 기분도 좋았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실질적인 방법론도 좋았다. 어쨌거나 그 사람의 책을 읽은 직후에는 내가 하고 있던 외국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되더라니.

그리고 그가 읽은 책들 가운데 헬렌 니어링, 체 게바라, 내 주변에서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해 혼자 애인으로 삼던 '책 속 애인들'을 공유하는 기쁨도 있다. 부디 건승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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