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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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주인공 작은나무가 고아원에서 매를 맞을 때,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몸의 고통을 겪어야만 할 때, 영혼을 띄워 자기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면 고통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동양에서는 사람이 이 거대한 우주의 작은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삶의 무게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종교적인 인식론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나 양철북의 오스카는 자기 자신의 삶을 잘도 객관화시켜 본다, 산다.

실상 이 책에 빠져 길고 긴 책을 일부러 오래오래 아껴 본 이유는 그 어떤 '주제' 때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스카가 왜 자기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냉소적이었는지,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 그 모순의 이유가 무엇인지 따위를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사실은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소설의 장면장면이 만드는 이미지를 즐겼다. 또 그 말잔치를 트럼펫을 부는 사나이와 그가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는 같은 스토리를 여러가지 버전으로 길게 반복한다. 그걸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산문시를 읽는 느낌.

삶이 무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이는 그 트럼펫 부는 마약중독자인 듯 싶다던 오스카의 생각은, 그러니까 그 세상에서 삶이 무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오만이겠지만 (어차피 누구나 자신만이 삶을 이해하고 있다고들 오해하며 사는 거지만) 오스카의 오만이 아니라, 그 트럼펫 주자에 대한 오스카의 이해에 대해 조금 공감했다.

삶이 허무한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이 모순되지는 않는다. 자기 삶을 들여다 보는 오스카가 추할 정도로 몸부림친 삶...

폴란드에 가 보고 싶다. 동유럽에 가보고 싶다. 모자이크처럼 마구 떠돌아다니는 양철북의 파편들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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