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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2 (반양장) - 고독의 나날속에도 붓을 놓지 않고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김홍도는 세속의 인정과 즐거움도 인품도 인덕도 어느 정도 가졌다. 그러나 심사정이나 이인상이나 최북은 그 반대였다. 인품이 배어나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 내 기억의 궤적을 모아놓고자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나의 가치관과 참으로 닿아있다. 하늘 끝까지 닿아 고적한 바위 산에 그 저 아래 보일 듯 말 듯 우주의 한 점으로의 자기 자신을 놓아두는 화가의 '허'하고도 맑은 기운까지는 아니더라도 참으로 한 번 살아볼 만한 가치있는 삶일 듯 싶다.
내가 문학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글 지어먹고 사는 사람들을 따르고 싶지 않은 까닭이, 세상에 백명의 작가가 있으면 그 중 아흔 아홉명이 삶과 다른 글을 쓰는 까닭이다. 아니 뒤집어, 삶과 똑같은 문학, 인격을 그대로 닮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라 해서 천재적 '기능'으로 '작품'을 만들어 놓고 제멋대로 세속의 삶을 사는 이들을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문을 보다가 책에서 보았던 이인상의 그림을 알아보았을 때 공부한 내용이 시험에 나왔을 때처럼 기뻤다. 애초에 작품 제목을 외우고 연보를 외우는 따위의 공부를 염두에 두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하나, 그림이고 글씨고 문외한이면서 그림 속 세계에 들락날락거리는 재미, 정말 맑게 살다간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로 천천히 이 책을 읽다가 까막눈인 주제에도 이인상의 글씨를 보면서 머리털이 곤두서는 충격적인 감동을 받는 재미도 있었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사심없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말년의 이인상의 뜨락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가 조금만 더, '덜' 쓸쓸했더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