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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김선우만큼 최승희가 잘 이해되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눈으로, 범인(凡人)의 눈으로, 현대의 눈으로, 혹은 당시의 눈으로... 어떤 눈으로 보아도 최승희를 최승희로 보아주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게 그녀는 시대을 거슬러 제멋대로 사는 여자로 보였을 것이고 또 누구에게는 친일과 친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혼을 지닌 이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 앞에 놓인 시대의 무게 앞에서 고뇌하는 그녀의 깊숙한 내면을 읽어주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친일을 말하든 명예를 말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춤추는 일, 나는 이름난 무용가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선전수가 아니라 그저 춤꾼일 뿐이라고 최승희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김선우는 듣는다.
나는 98년 왼쪽 귀를 수술하고 일주일 입원해 있는 동안 최승희 전기를 읽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절판된 뿌리깊은나무의 책이었던 듯 하다. 사진 속의 그녀는 빛나는 존재였는데 아무래도 20세기의 후반의 그녀가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년을 거슬러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몸가짐도 그렇게 모던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눈빛이라니! 외로운 병실에서 흑백사진 속의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치명적인 수술은 아니었지만 텅 비어 있는 하늘과 겨울 숲만 보이는 병실에서 충분히 외로웠고 충분히 맑았을 때 만난 그 사람은 딱딱한 전기문에서나마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듯했다. 치열한 것, 열심히 사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것의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무엇으로 충만한 것. 공유와 공감. 그렇게 아플 때가 아니었으면 나도 조금은 날선 눈으로 냉철하게 그녀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김선우를 좋아한다. 몇 권의 책으로 사람을 안다 말하기 어렵겠지만 이 사람은 글과 사람이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그토록 농염한 시를 쓰는 그녀가 맑고 고즈넉한 눈빛을 가진 것이 오히려 그 진정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는 그녀가 한겨레 신문에 피 토하듯 세상을 갈하는 목청을 담아내기에, 혼이 맑은 이이기에 오히려 죽어가는 것들, 어리고 약한 것들에 겨누어진 칼날에 서슬 퍼런 야단을 쏟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선우가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시 칼럼을 연재했다. 한때 안도현이 조선일보에 글을 실었다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다. 나 역시 그 일이 서운하게 느껴진다. 한 편으로는 그 사람에게 무슨 생각이 있었으려니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이 마음에 문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다른 이를 받아들일 여지도 적어지려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떤 눈으로 보면 최승희는 한없이 이기적이어서 세상에 눈 돌리기보다 자기의 예술적 욕심(그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개인적 성취욕일 수 있다)에만 빠져 살았던 사람일 수 있다. 자기 욕심을 위해 세상에 눈을 감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성의 품으로 김선우가 안아주었듯이 때로는 좀더 깊고 넓은 마음의 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두 아름다운 여자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헷갈리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