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나에게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모두 뒷모습을 남기는 느낌이다. 불사르고 간 인생들, 처절한... 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

삶의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용의주도하게 준비하고 성취한 이들이 아니다. 어떻게 서경식은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모아 놓을 수 있었을까. 그의 글을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처음 접했을 때도, 글을 쓴 사람이 너무 춥게 느껴져서 좋았고 또 안쓰러웠는데 지금도 그렇다.

한겨레신문에서 가끔 서경식의 글을 만나지만 뭐랄까, 일본식 말투가 조금은 이국적인 그의 글은 언제나 잘 읽힌다. 그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책 속의 글들도 딱히 그만의 문체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마치 인명백과사전처럼 객관적 사실들을 늘어놓고 가끔, 그들의 시가, 그들의 그림이 어떻게 자신에게 다가왔는지 가끔 이야기할 뿐이다. 그런데도 짧은 글 속에 한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 - 시들, 사람들의 평, 그가 남긴 말들 따위를 배치하는 방식 - 때문인지 글은 참 술술 읽히면서도 쏙쏙 들어와 박힌다.

어쩌면, '누구'를 선정한 그이의 안목이 이 책을 눈에 착 감기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에는 낯설지도 모를 일본에서 유명한 몇몇 사람들을 소개한 것에 대해 조금은 미안해 하는 듯하지만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던 일본인, 혹은 일본에서 죽어간 활동가들의 이름을 알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 아이미쓰, 가네코 후미코, 하세가와 데루...

얼마전 영화 '색계' 에 대해 잠시 생각했던 일. 일제가 일으킨 전쟁의 상흔과 역사의 소용돌이는 결코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고통뿐 아니라 투쟁 또한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조국인 일군국주의에 의한 식민침탈을 조선인 못지 않게 가슴 아파했던 좌파 지식인들과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시인들이 있었다. 우린 몰랐다. 중국도 비록 식민지가 되진 않았으나 일본의 만행에 피해를 입었고 친일행각을 벌인 이들과 그들과 맞서 싸우려 했던 애국적, 애족적, 혹은 친인류적 행동가들이 있었음을, 몰랐다기보다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도 일본에서, 중국에서 젊은 나이에 온갖 불명예와 육신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이 나온다. 아닌 것은 아닌데, 그런 생각에는 일본인, 중국인, 조선인이 따로 있지 않았는데 그들은 왜 만나 함께 싸우지 못했을까...

빅토르 하라의 노래 일부를 직장 메신저의 닉네임에 띄워 보았다. 짧은 향 하나를 올리는 기분이었지만. 어떤 이가 드디어 외국시인의 이름도 올리셨냐고 인사를 해서 기분이 묘했다. 태양은 빛나네, 빛나네, 빛나네... 아무것도 모르고 읽으면 남미의 뜨거운 태양을 연상하고 뜨끈한 열정과 행복을 느낄지도 모를 구절이다. 시란 게 단 한 마디의 울림, 사람마다 다른 받아들임일 수 있지만 태양과 별을 노래하는 그의 시가 나에게는 처절하게 느껴진다. 하필 그날 첫눈이 내린 다음이라 하늘은 참 파랬고 햇살이 눈부셔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진했다. 아름다운 태양이었지만 칠레의 하늘에 이글거리던 태양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빅토르가  언젠가 날아오르리라던 비둘기가 지금은 칠레의 그 하늘을 날고 있을까.

인간은 왜 이리 슬픈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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