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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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의미든 철학이든 메시지든 논해야 할 것이다. 그걸 내가 잊고 살다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90년대 이후 어른들의 한국 소설을 거의 읽지 않고 살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가끔씩 소설을 읽으면 잊었던, 놓고 왔던 고향마을에 다녀온 기분이 들곤 하는 걸 보면 어쨌든 내 영혼의 고향은 문학이 맞다.

 

학생들에게 읽힐 청소년 소설을 열심히 탐색한다. 대부분은 다 읽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구 쏟아지는 청소년 소설들을 감당할 수 없다. 문제는, 내가 가르치는 남자 중학생을 위한 소설은 거의 없다는 것. 대부분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거나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욱더 적절한 책들을 고르려 열심히 읽는 수밖에 없다.

 

호평이 쏟아진 <첫 여름, 완주>도 그런 청소년 소설이거나 하고 읽었다.

처음부터 너무 재미있다. 주인공 손열매가 어렸을 때 (아마도?) 충청도 아니면 전라도의 것일 사투리를 구사하는 장면부터 그렇다. 그런 말맛을 좋아하나 보다, 내가. 그런 유머 코드는 곳곳에서 독자인 나를 즐겁게 하면서 손열매의 캐릭터를 만든다. 고난과 시련과 그리움과 상실을 다 가지면서도 열매가 꿋꿋한 것은 기질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라서일까, 사람 귀한 줄 아는 사람이라서일까.

하긴 사람 귀한 줄 아는 사람은 이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사실상 손열매의 인생에 큰 스크래치를 낸 고수미의 어머니도 그렇고 열매의 남자 어저귀는 말할 것도 없으며 동네 사람들 중 이장이며 잘난 체 끝판왕인 줄 알았던 배우 정애리까지, 불의를 그냥 넘기지 않고 이웃을 나몰라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등장한다. 중학생들마저도.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헷갈리는 게 있다. 세상은 각박하고 다들 도둑놈들이니까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아야 한다, 가 맞는 건지,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가 맞는 건지... 물론 나는 후자의 가치관을 갖고 산다. 그건 내 친구 말대로 네가 나쁜 사람을 안 만나봤구나.”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한편 나쁜 사람들에게 숱하게 돈을 뜯기고도 하염없이 긍정적이던 나의 아버지를 닮은 낙관주의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교사인 내가 세상과 사람에 긍적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겠는가. 교육이란 건 희망이 없다는 자세로는 행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여간 나는, 세상에는 치명적으로 나쁜 사람도 꽤 많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좋은 쪽으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이 소설은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 이야기를 한다. 어저귀가 열매를 구덩이 속으로 불러들여 나무 뿌리에 얽힌 균사체들의 네트워크를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서로 얽혀 있으면서 고난이 닥쳤을 때 서로를 돕는다. 죽은 어미의 살아남은 어린 자식을 이웃이 함께 키우듯이 그렇게. 나무뿌리를 잘라내기도 하고 어린 나무싹을 살려내기도 하고, 그러기 위해 땅속 균사체가 소식을 적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낸다.

암투병 중인 수미의 어머니에게 열매는 빚을 받으러 온 빚쟁이가 아니라 딸의 흔적을 전하는 균사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무뿌리에 얽혀 이사람 저사람 만나면서 그 자신 치유되고, 사랑하고, 믿음을 회복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방적이지 않다. 심지어 다른 이들보다 초월적 존재로 보이는 어저귀마저 남들을 일방적으로 돕기만 하지 않는다. 그 자신 사랑으로 생기 있어지는 걸 보면 그는 외계인보다 자연 그 자체의 비유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랜 세월 살아가며 인간과 늘 함께하며, 때로는 죽거나 사라진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을 뿐 어딘가에 우리 곁에 있을 게 분명하다는 믿음을 주는, ‘자연’......

 

재미있었고 웃겼는데 범자연적이고 우주적인 철학까지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듣는 소설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신형철이며 아이유, 가장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유명인들의 추천사도 화려한데 요즘 가장 핫한 배우 박정민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뭐 이런 사기캐가 다 있나 싶은, 그런 소설을 만났다.

 

 

페데리코 펠리니 길 영화 유튜브에 있음

157쪽 숲의 네트워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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