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 - 원자 단위로 보는 과학과 예술의 결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 지음, 강민지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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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자연/천연의 것은 좋은 것인데 현대인의 삶은 화학물질과 화공약품에 뒤덮여 사느라 비참한 것처럼 말한다. 나 역시 욕실과 화장대에 가득한 좋은 물건들을 열심히 사용하면서 그런데 저것들은 모두 화학물질 범벅이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화학에 대해 그렇게 일천한 생각을 가진 게 고작인 내가 화학자가 쓴 에세이를 읽었다. 요즘엔 왜 이렇게 장르를 합종하는 멋진 에세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다루는 분야는 전문적인데 얼마나 문학적인 필치로 그것들을 옮겨 담는지, 게다가 그 안에는 얼마나 인간적인 서사들이 담기는지, 세월이 가면 읽을 만한 책(고전)들은 줄어들 줄 알았건만 어디서 이렇게 새롭게 멋진 글을 쓰는 작가들은 계속 태어나는지 모를 일이다. 미술, 과학, 건축, 환경, 음악, 농사... 그 모든 분야에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는 화학자이지만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근무한단다. 그러고 보니 미술은 예술이기도 하지만 화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걸 새삼 깨닫는 게 우습고 재미있다. 안료들, 그림의 변화, 이런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기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별로 없는 영역일 수 있으니까. 그래, 인생은 늘 그렇다. 대개는 자기 입장에서만,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듣고 인식한다. 그 한꺼풀 아래 숨겨 있는 많은 사실과 진실을 접할 때 우리는 내가, 우리가, 인간이 얼마나 얕은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다.

 

저자가 소개하는 미술 작품들은 책 속에 삽화로만 소개가 되어 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도 그랬다. 저작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게 좀 답답하기도 했지만 거꾸로, 책을 읽으면서 계속 검색해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떤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고 어떤 작품은 검색조차 되지 않았으며 어떤 작품은 매우 생경하다. 그래서 더더욱, 세상은 넓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미 십수 년 전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적 있어서 다시 또 갈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동생이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빌바오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들으니 나 역시 한 번 더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설렌다. 우울감을 달래려 재미 삼아 공부하고 있는 스페인어, 빌바오에 가서 몇 마디라도 써 보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건축학적으로도 아름답다는 그 미술관에 가서 여기 근무한다는 저자의 책을 읽었노라 회상도 좀 하면서. 그리고 책 속에 소개된 사르가델로스도자기도 꼭 보고 싶다.

 

저자는 화학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한다.

화학 덕분에 단열성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농업, 비누, 물 염소 처리 등 질병에 맞설 수 있는 물질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서. 화장대 위에 놓여 나의 극건성 피부를 촉촉하게 달래주는 화장품들에 품었던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인공이 아니어도 자연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화학적 작용들이 있을뿐더러, 인공의 삶을 더 낫게,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고맙고 다정한 화학의 손길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저자는 과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세상은 아름다우면서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재미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치거나 죽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다. 나는 무엇으로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던가. 가끔씩 쓴 글들, 밤마다 조금씩 읽던 문학작품들, 어쩌면 돈이나 성취와 별로 관계가 없었을지도 모를 순정한 세계가 사실은 사람들을 살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 진리, 영적인 것 등등.

 

색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마침 그 대목을 읽고 있을 때 팟캐스트에서 색상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학생 때 아버지가 어디서 색상표를 얻어다 주신 적이 있었다.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지만 붓에 물을 묻혀 색상표를 문지르면 물감이 묻어나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들이 시각미술과 학생일 때도 그런 색상환을 가져온 적이 있다. 그건 물감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팬톤 색상표 같은 거였나 싶다. 엄청나게 많은 물감 색을 다 외우던 미술학도는 지금 전공과 정반대의 삶을 꿈꾸고 있지만 나는 정교하게 조금씩 다른, 많은 초록들의 이름이 적혀 있던 아들의 스케치북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미술 공부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십수 년 전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책 속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오래된 책 냄새 이야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래된 책 냄새나 변색, 혹은 그 물성에 특별한 감회를 가질 것이다. 저자는 그게 사실 종이 성분 중 하나인 리그닌때문에 일어나는 화학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를 나는 먼지 냄새가 섞인 볏짚 혹은 소쿠리 냄새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서구의 그는 그걸 아몬드 향 혹은 바닐린 향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도 그런 냄새를 풍기는, 바스라질 것처럼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들이 있다. 1982년에 출판된 <데미안> 같은 것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한 화학의 세계를 사랑하는가 보다. 곳곳에서 그런 흔적들을 보았다. ‘모든 것은 100개 남짓의 화학 원소로 설명이 가능하다.’ 화학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도 한다. 질서를 사랑하는 바 과학자다운 시선이지만 그렇게 자신의 공부를 사랑하는 마음의 진정성에 깊은 경의를 느낀다. 자기 삶에 진심인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어쩌다 보니 이 길로 흘러들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살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든, 타고나기를 그 길 아니면 안 되게끔 태어나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살고 있든,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으로 열정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지고 미칠 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저자는 혹시 예술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면서 파사로의 말을 빌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평범한 곳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한다. 그런 안목을 지니고 살면 행복할 것 같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그걸 멋진 글로 풀어내 우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작가는 행복할 것 같다. 그의 문장력은 탁월하지만 특히 자신의 조부모님에 대한 감회를 담아 그분들은 나에게 흑백의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그분들이 있는 묘지에 가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라고 쓴 문장을 읽으면서 아련해졌다. 나이 듦, 삶의 허망함, 죽음에 대한 준비에 대해 점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점에서, 나이 든 존재, 사라진 존재에 대해 저렇게 통찰할 수 있는 후손이 있다면 늙거나 죽는 일도 아주 쓸쓸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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