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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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유튜브에서 보긴 했지만 최강욱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다. 그가 사면되기 직전에 이 책을 냈다 할 때도 유명세에 올라타 책을 내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낸 사람이 쓴 책을 보수 진영의 사람들이 선택해 줄까 싶기도 했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지 못 하는 책의 한계에 회의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을 읽고는 눈이 번쩍 뜨인다. 이건 중학생에게 읽혀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쉽고 재미나게 쓴, 그러면서도 알찬 지식으로 꽉 찬 교양서라니, 역사와 정치와 철학, 많은 예시들까지.

 

20대뿐 아니라 10, 특히 남학생들이 우경화 아니 극우화되고 있다. 이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내가 매일같이 보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지난 번 독서 시간엔 소년 정치하라라는 책을 들고 내게 항의한 학생도 있었다. 편향된 거 아니냐고. 언론의 진실성과 보도윤리에 대해 가르칠 땐 딱히 어느 매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언론도 정치 편향이 있지 않냐고 질문한 학생이 있다. 그런 질문의 의도는 대개 반진보, 그들 말로 좌빨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광주항쟁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간첩 운운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다.

 

그런 학생들에게 이 책을 건네며 읽어 보라고 한다면 엄청난 모험이 되겠지? 나는 낙인 찍힌 교사가 될 것이다. 아니, 생전 학생들과 대립각을 세워본 적이 없었던 내가 요즘 가끔 나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지 내가 늙은 교사라서만은 아닌 것 같다. 광주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 나와 경계를 세우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이 책을 건넬 용기는 솔직히 없지만 마음은 간절하다. 아마 현실적으로 나는 윤어게인을 주장하는 친구에게 윤옥에in’이라고 농담으로나마 맞설 수 있었던 태성이 같은 학생에게 이 책을 권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 난 좀 비겁한 교사다. 군부독재 시절에도 두려움 없이 광주를 가르쳤던 내가, 이제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은 10대의 극우 혐오 발언을 일삼는 제자들이 되었다.

 

그런 현상을 두고 이 책에서는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인용으로 대신했다. 나는 신념이라 생각하고 상대방은 자는 척하는 사람이라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면서도 어느새 가족도 스승과 제자 사이도 가르고 있는 한국의 진영논리에 절망한다.

 

그리고 ‘10분 정도 차근차근 자기가 진보(보수)인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을 만났을 땐 나 스스로 각 분야에 대한 나의 사고, 그 근거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적어도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근거를 대 상대를 설득/제어할 수 있어야 토론이라고 가르쳤던 것은 바로 나이니까.

 

일단 이 책은 진보 /보수의 개념 정의를 먼저 내린다. 그러기 위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한 번 쭉 훑어주는데 그 부분이 매우 유용하다. 그 부분만 청소년에게 읽혀도 좋을 정도이다.

어른들은 아마도 자신이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이 민주주의의 역사’, 저자의 말대로 안다고 생각하는 대로 어린 사람들에게 술술 말해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계몽주의는 진보주의의 이념적 기반이 된다는 대목에서는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계몽이라는 말은 이미 굳어진 말이고 때로는 조롱의 언어가 되었지만 사실은 근대로 넘어오는 데서 매우 중요한 단계의 철학적 혁신이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성주의, 합리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중, 모든 인간의 평등, 인류의 진보를 믿음, 이런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개념들이 거기 담겨 잇었다. 오래 전 책을 읽다가 계몽주의가 대두되면서 여자와 어린이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창한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대혁신이었던 시절이 있다. 우리도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거겠지만.

 

진보/보수의 기준은 필요한 사회 변화에 대해 천천히 신중하게 최소한으로(The conservative)/빠르고 과감하게 전면적으로 (The progressive)’로 나눈단다. 동료들과 농담삼아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이나 생활에서 보수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다. 삶과 정치적 지향이 달라서는 안 되겠으나 자본주의 극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머리로는 비록 나눔과 평등의 가치를 지녔다 해도 내 한 몸 내 가족의 안위와 안정을 위해 돈을 모으고 부를 축적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진보도,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진보도,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그 무엇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이제 진영을 나누어 싸우기도 머쓱할 만큼 섞였다.

 

그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의 민주당을 진보진영이라 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우리나라 민주당은 중도 보수에 가깝다. 본인들도 알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지향은, 지금은 소멸하다시피한 전보정당들에 더 가깝다. 그러나 생활 보수에 가까운 나는(세금을 내는 데에 너그럽고 재산 축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할 뿐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선거에서 중도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진보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련다. 저자가 의도를 담아 단 제목 그대로 이로움을 좇기보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알량한 이로움에 연연하거나, 그것을 내 능력으로 얻었다고 믿는 오만을 부리기보다 멀리 보아 무엇이 의로운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려 한다. 그런 성찰 때문에 때로 비교적 안락한 삶에 대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가장 치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할 일은 무엇인지 찾아 그걸 해내려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어떤 이는 총으로, 어떤 이는 펜으로 어떤 이는 꽃으로도 제국주의와 맞섰다, 내가 갖고 있는 세상의 희망을 일굴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계엄 날 일찍 잠든 탓에 국회에 달려가지 못했던 우리 부부는 뒤늦게 그때 우리가 잠들지 않았다면 국회로 달려갔을까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게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늘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현재에 기대도록 만들지만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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