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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詩作法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고명섭의 책 속에서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발견했다. 읽으면서 새삼, 문학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늘 문학작품을 끼고 사는 건 아니지만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책들도 읽고 다른 취미생활도 하고 일상을 살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문학은, 종교는, 가족은 그런 것이다. 늘 거기에 최선을 다하지는 못해도 나의 가장 최후의 보루이며 품인 어떤 것. 오랜만에 그걸 깨달았다.
안도현의 글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다. 물론 <연어> 등 산문으로도 충분히 우리를 기쁘게 해준 작가이지만 수업 강의록으로 보이는 이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약간의 유머감각마저 느끼며.
시를 잘 쓰는 비법이란 게 있을까? 아무리 천재가 아닌 노력과 탐구가 중요하다고 모든 작가들이 시인들이 강조할지라도 노력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역은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그의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감정이 아니라 이야기를 실어 시를 쓰라는 말이다. 삶에 뿌리내리지 않은 그 어떤 문학작품도 없다. 가장 깊은 시와 소설은 일상과 역사와 생활과 실제에 뿌리를 둔다. 그래, 그 짧은 시 <너에게 묻는다>에도 얼마나 많은 서사적 상상력이 발동되는가 말이다.
그는 시를 쓸 때 지키라는 ‘계명’조차 시처럼 썼다. 단지 그 제목만 옮겨적어 보아도 감정이 약간 격앙된 격문처럼 읽힌다. 비상계엄이라는 블랙 유머가 펼쳐지는 대한민국 2024년에, 오래전 쓰인 한 시인의 ‘시 이렇게 써라’ 격문. 다시, 세상을 살게, 살아남게 하는 것은 문학, 그리고 유머감각과 발랄함, 이라고 생각하며 읽어 보자.
제발 시를 쓸 때만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마라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기이한 시어를 주어와 자랑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