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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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의문이 든다. 83년생인 작가는 어째 엄마의 입장을 더 많이 대변하고 있을까,

곤란한 처지에 놓인 엄마, 허름한 집 한 채 있는 게 다인, 요양보호사로 살아야 하는 팍팍한 삶의 엄마. 그리고 박사까지 되었지만 시간 강사일 뿐인 곤궁한 딸은 집에 들어와 살겠다 한다. 그리고 동성의 애인까지 함께.

 

취업 준비생인 장성한 아들딸과 한집에 사는 나로서는 장성한 자녀와 한집살이가 어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나의 딸애는 책 제목만 보고 엄마, 이 책 왜 읽어?” 한다. 찔렸다며... 그렇게 킬킬거리며 미안함과 불편함을 서로 말할 수 있는 관계는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그 위의 아들은 결국 나이도 많은데 얹혀사는 게 미안하다며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나는 독립이든 동거든 한국 사회가 사회적 문제로 겪고 있는 청년 실업과 장기적 공시 준비생들의 고뇌가 우리집에도 거한 것뿐이라 생각한다. 물론 소설에서처럼 동성 연인을 대동하고 나타나 문제 위에 문제를 얹지 않았을 뿐. 비슷한 사정의 집들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비슷하게 얹힐 수 있다.

 

내가 이 소설에서 주목한 부분은 동성애인을 가진 딸을 보는 엄마의 복장 터지는 상황이 아니었다. 딸애가 세상 불의에 맞서는 장면은, 그 기질은, 대한민국 30대 여성의 표상을 보는 것 같아서 생각에 잠기게 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성과 열정을 진보적으로 펼치는 존재들의 중심에는 30대 여성이 있다. 나의 딸 말마따나 처음에는 페미니즘의 관점, 즉 여성 인권에 눈을 떴지만 생각의 확산은 정치적 진보, 인권, 소수자나 이주민의 상황에 대한 이해, 자연, 기후 위기, 심지어 동물권(그리고 비거니즘, 환경론까지)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성들이 그토록 환멸하는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안으로 똘똘 뭉쳐 진보적인 사람이 되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는 딸의 진보적 열정이 시간강사들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삶에 찌든 엄마는 그런 딸과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세대 간 갈등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마도 젊은 독자들은 외롭고 고단하고 강퍅한 딸의 삶에, 나이 든 독자라면 이해할 수 없는 자식 세대에 대한 푸념으로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했을지 모른다. 나는 한때 교사이기도 했다면서도 사유를 확장할 노력을 하지 않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세대로는 엄마 세대이나 의식으로는 딸의 사고방식에 가까운 이상한 관점으로 소설을 읽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를 눈 번쩍 뜨게 한 것은 소설의 결말이다.

 

엄마는 요양보호사로서 한때 약자를 위해 열심히 살았던 이라는 노인을 돌보고 있었다. 가족이 없이 치매를 앓고 있던 그이의 상태가 더 심각해지자 요양원은 젠을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무용한 병자로 취급한다. ‘엄마는 그에 맞서 싸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곧 그의 딸 그린의 모습이었다. 그린이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움에 나서는 것처럼 약자를 돌보던 엄마의 사유는 요양원에 대한 저항으로 확장된다. 엄마는 무기력하고 보수적인 사람같이 보였지만 사실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딸은 고단한 삶은 같은 길로 수렴한다.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바로 그것이다. 부당함에 맞서는 태도는 어떤 깊은 공부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인성이고 삶의 태도이다.

 

이 소설은 구질구질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끝, 혹은 각자의 이야기를 구시렁거리다 끝, 이 세상의 중심은 나야, , 하는 자아소설의 끝판왕, 그런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올바름을 구호로 외치는 소설도 아니다. 그래서 아마 세상은 이 소설에 주목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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