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이푸로라 옮김 / 마인드큐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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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가 궁금해질 때마다 사춘기 때 그랬듯이 예수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다만, 그가 신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신앙을 갖진 못한다). 내 삶이 늘어진다거나 슬프다고 생각될 때마다 그이를 떠올리면 조금은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얼마 전에 그런 책들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권력도 돈도 갖지 못했던 이들, 살아생전 고난과 핍박과 고통스러운 죽음을 면치 못했던 세 사람. 인간은 운명 앞에 나약하고, 아무리 좋은 운명을 지녔어도 피할 수 없는 생명의 고통을 품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정신의 고결함을 유지하는 자율성을 지니기에 무의미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이다. 예수와 붓다와 소크라테스는 그런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정점에 있는 이들이다.

 

붓다라 불린 사람은 2500년 전 북부 인도에 살았다고 한다. 그리스인 소크라테스는 약 2300년 전 아테네에 살았으며 예수는 2000여 년 전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무덤이나 유골은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화폐나 고고학적 흔적도 없다.... 그런 흔적이 없는 이유는 이들이 한 번도 권력을 손에 쥐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지 않았으나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산다.... 역설이다. 이런 역설은 역사에 부지기수다. 애초에 그들 삶의 목적이 무언가를 남기는 것도, 유명해지는 것도 존경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렇다,

 

소크라테스의 친구가 델포이 신전에 신탁을 받으러 갔다가 '모든 사람 가운데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롭다'는 신탁을 들었다 한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롭다는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것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현명한 사람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델포이 신전에 쓰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는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무지를 일깨워주는 사명을 좌우명으로 갖게 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서 자기가 치열하게 살았던 것, 알아 왔던 것, 쌓아왔던 기능과 지식들이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는 자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현명한 늙은이는 늙을수록 자기가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진정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야말로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공부할 게 너무 많음을 깨닫게 된다. 간장 종지만 한 세상에 살고 있는 이는 오만을 못 벗다가 자기가 세상 최고인 줄 알고 살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평범하지만 지혜로운, 그리고 겸손한 노인이 되고 싶다.

부처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엄근진(엄숙근엄진지)이지만 예수와 소크라테스에게는 유머 감각을 본다. 부처도 농담을 하는 이는 아니었더라도 자애롭고 따뜻한 이였나 보다. 유머 감각은 여유에서 나온다고 했다. 너그러움은 세상과 우주를 넓게 이해하는 이에게나 가능한 덕목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량없이 푸근하기만 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때로는 단호하고 엄격했으며 특히나 그 엄격함의 잣대는 제일 먼저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던 이들이다. 1. 자신에게 엄격하고 2. 기득권 세력에게 냉철하며 3. 약자에게 너그러운 지도자.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생을 살며 자신을 벼리는 기준으로 삼아아 할 덕목이기도 하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한없이 슬프고 우울할 때마다, 내가 못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토록 예수의 삶을 되짚어 보려 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우연히 발견한 책이지만 이 책처럼 치우침 없이 세 존재의 삶과 행적을 어렵지 않게 들려준 책이 있었나 싶다. 나이가 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돌아봐야겠고 철학과 종교에 대해 알아나가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이, 특히 지성으로 접근하기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으로 첫 발걸음을 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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