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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평점 :
영어 원서는 읽는 데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하긴 하다. 재미있어서 영어 공부하기 딱 좋다는 말에 속아서(?) 책을 사들었지만, 그리고 로알드 달의 <마틸다>를 읽던 방식으로, 단어 찾지 말고 이해가 되거나 말거나 쭉쭉 읽어나가리라 결심했지만, 이 책에 사용된 단어들은 결코 쉬운 단어들이 아니었다(물론 어린이 책인 마틸다도 결코 쉽지 않았다). 러브스토리라 다음이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고? 그런 말 하는 이들은 영어 쫌 하는 사람들인 거다.
온갖 번역기를 다 써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진도는 나가지 않은 지 1년도 넘은 것 같다. 결국 나는 도서관에서 한국어판 <미 비포 유>를 빌리고 말았다. 그렇게 어찌저찌하다 보니 책을 두 권 읽은 셈이 되었다.
중간을 넘어가면서, 그러니까 윌과 루가 교감을 하면서 소설이 재미있어졌다. 루의 어떤 면이 윌이 보기에 ‘똑똑해’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루는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지만(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었을 터) 윌은 그 ‘너머’를 본다. 인생은 그런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지고 성공하는 법이다. 나도 못 본 나의 잠재력과 장점을 보아주는 사람 말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에게 그런 존재라면,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면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주인공인 루가 그런 귀인 ‘윌’을 만나 인생 역전하는 이야기이다. 구조적으로 신데렐라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잘생긴 부자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는 면에서. 그런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면이 이 소설 플롯의 특성이겠다. 그 사랑은 일방적이지 않다. 윌도 루에게 가장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았으니. 아마도 건강한 몸으로 살았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면에서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지도 않고 시혜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온전히 영화로 감상할 기회는 없었다. 부분적으로 찾아본 영상 속 두 주인공은 소설 속 인물들과 너무나 닮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분이라도 소설을 꼭 읽어 보라 권하고 싶다.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 잘 묘사된 좋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비록 원서를 읽는 사람을 괴롭힐지언정 우리가 아는 흔한 표현이 아닌 풍부한 표현들로 인물의 감정을 잘 전달한다(한국어판 번역도 훌륭하다). 그리고 그들의 캐릭터도.
슬펐고, 너무 오래 읽어서 이제 안녕을 하고 싶기도 한 그런 책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헤어질 때 아쉽겠지. 그러나 때가 되면 이제 그만, 해야 할 때가 오는 법. 책 한 권은 인생 한 권 같다. 뒤에 보니 저자는 이 이야기의 다음 편, 또 다음 편을 썼던 모양인데, 윌이 없는 루만의 이야기는 (보나마나 재미있겠으나) 보고 싶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나도 윌 트레이너를 사랑했던 건 아닌가, 잠시 생각해 본다.
윌, 걱정마시게. 루는 잘 지낼 거야(잘 지낸대). 나는 왜, 너를 간절히 사랑해서 아팠던 루의 고통보다, 네가 루를 만나 사랑하면서 느꼈을 갈등과 너무나 길었을 상념의 시간들에 더 공감하는 걸까.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기억일지라도 그 다음에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인 거라서 그랬을까. 그러니까 루는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 넌 애틋했으나 걱정하지 않았을 거야. 너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갈 사람인지 잘 알았으니까. 그럼 나도 이제 너랑 안녕할게. 흑, (이래서 책을 너무 오래 읽으면 안 돼...) 아냐, 윌, 괜찮아, 난, 난 중학교 때 돈키호테를 읽고 나서도 울었던 사람이라(그때도 두꺼운 세 권의 책을 오래오래 읽어서 그랬겠지만).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