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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품절
글을 읽으면서 내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부러워했다. 우리에게 이런 거대한 미술관이 있나, 더듬어보면서. 작고 사랑스러운 미술관들이야 많지만 보물을 무궁무진 품은 것 같은, 언제라도 달려가 못 본 구석구석을 다시 보고 싶은 그런 미술관, 가령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같은 곳이 서울에 있던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가 본 적 없지만 만약 내가 뉴욕에 사는 주민이라면 시간이 날 때 종종 가 보고 싶을 것 같다.
나에게 그때 국박은 숨통이었다
1994년, 오래전이긴 하지만 첫 직장을 접고 서울에 와서 두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세 살밖에 안 된 아기와 투병 중인 시부모를 모시고 박봉과 야근에 시달리며 직장을 다녔다. 그런 무리수를 둔 이유는 경력 단절의 걱정 때문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결혼한 여자들이 다 하는 걱정일 터. 하루에 4, 5시간밖에 못 자던 시절, 숨 막힐 것 같던 그 시절.
그나마 다니던 회사가 마감이 아닐 때는 ‘취재’라는 명목으로 대낮에 서울 시내 여기저기를 다닐 수 있었다. 심지어 마감 직후에는 서점이나 박물관에 가는 일이 취재 거리를 찾는 ‘합법적’인 행위였다. 그때 한낮에 당시에는 경복궁 옆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끔 갔다. 사람이 거의 없는 박물관에 남긴 나만의 발자국 소리가 겨우 나를 숨 쉬게 했다. 잠이 모자라 로비에 앉아 깜빡 잠이 들기도 했던가.
홀로 작품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거대한 미술관에서 경비를 서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볼까? 작가가 경비를 서면서 홀로 마주한 작품은 그 긴 시간은 오롯이 작품 감상만의 시간이었겠는가? 온갖 상념, 자신에 대한 성찰, 과거에 대한 슬픔과 미래에 대한 계획들로 가득 찼을 것. 그때 떠오른 생각들은 글이 되었을 터. 나는 그, 홀로 생각에 잠겼을 작가의 시간에 공감한다. 세사로부터 도망치듯 혼자 유물과 작품을 마주하던 나의 고독함과 어딘가 닮은 듯하여.
친절하고 인정 많은 어머니와 소박하지만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알았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저자는 품성이 따뜻한 사람인 듯하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람객을 ‘손님’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도 그러하지만 내가 그를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편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과 출신으로 구성된 매트의 경비원 동료들에 대해 그가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어떤 삶의 경험을 지녔든 하나의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한다. 그림에 대해서도 중국이나 이집트 그리스와 유럽을 망라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읽는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형을 잃었지만, 그 충격으로 소위 잘나가는 직업을 버리고 스스로 박봉의 경비원이 되기를 선택했지만 신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미술관 앞뜰에 앉아 1달러짜리 핫도그를 먹으면서 이 직업과 삶에 대해 만족해하고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외지인 무리 사이에 끼어 앉아 나 혼자 유일하게 이곳에 속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즐긴다. 계단에 편히 자리를 잡은 나는 재킷 단추를 열고 클립으로 부착하는 넥타이를 떼고, 공중에서 이런 나를 내려다보면 얼마나 멋진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일까 생각한다. 이 위대한 도시의 심장부에 있는 위대한 미술관의 계단에 작은 경비원 하나가 앉아 있다. 작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는 아니다. 앉은 자리는 편안하고, 근무복은 몸에 잘 맞는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예술이어야
월급은 어떨지 몰라도,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직업이 힘들지는 몰라도 이 미술관 경비들이 부러운 지점이 있다. 직원들의 가족이 미술관 휴무일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 그들만의 작품 전시회를 열어준다든지, 그러니까 직원의 복지를 ‘돈’의 개념이 아니라 배려와 예술적 관점으로 베푸는 것. ‘메트’는 경비원들이 투고하고 편집한 미술 작품, 시, 산문 등을 실은 <스와이프>라는 매거진을 발행했단다. 그리고 가끔 일반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전시회를 열고 직원들이 작품을 출품할 수 있도록 했단다.
예술 작품이 거하는 곳에 예술 쫌 아는 사람들이 근무한다는 것을 회사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작가는 ‘나무의 뿌리는 그 나무의 가지만큼 뻗어나간다고들 한다. 그건 미술관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이 세상은 모두, 특히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곳일수록 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매트에도 경비원이 600명쯤 된다고 했던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인가.
남은 하나의 소원은 다른 이를 위해
글의 맥락과 상관은 없지만 책 속에서 가슴에 남는 말이 하나 있었다. 소원을 비는 아이에게 한 어머니가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빌라 했단다. 최근의 나에게도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 소원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부끄러워지곤 한다. 내 자식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은 얼마나 말초적이고 어리석은가. 그러나 간절한가. 그래서 자식이 무엇을 얻게 해달라는 말 대신 ‘그들이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노력에 합당한 결과를 누리게 해달라, 부당하게 삶에서 좌절을 맛보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정말 좋은 모성애를 지니고 있다면 이 땅의 모든, 열심히 사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지. 그러나 현실의 나는 초라하고 나약한 어미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기도는 부끄럽기도 했다. 기복은 기복이더라도 ‘다른 하나는 간절한 다른 누군가 소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리라.
예술관,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 역사관
저자가 관람객에게 르네상스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누구든 가장 쉽게 설명하는 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이고,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다. 겉모습은 경비원이되 그 안에 예술을 이해하는 지성과 교감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그림을 사진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들은 보통 천사나 성인 같은 소재를 그렸는데 그것들을 거의 상징적 기호에 가까운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잘 묘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두초의 이 그림은 르네상스 초기에 그린 거예요. 그때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시기였어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그들의 삶과 꿈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그 이전에는 인간이란 지구에서 짧은 생을 보낸 후에 내세로 나아가는 죄 많고 타락한 생명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건 상당히 새로운 견해였어요.
그러다 보니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내야 했어요. 만물을 보는 방식을 말이죠... 그들이 발견한 만물 간에 균형을 맞추고 우연과 영원을 조화시키는 방법은 오늘날 당신과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도 작용하고 있고 수많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죠.
그리고 미켈란젤로에게 배우는 오늘
작가는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시대의 거장이 얼마나 자신에 대한 번뇌하는 사람이었는지 보여준다. 그는 ‘제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예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예요.’라며 오늘날 우리가 ’하이 르네상스,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 부르는 자신의 시대에 대해 고뇌했단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사소한 실수로 성 베드로 성당의 완공이 늦어지게 된 일로 크게 자책하며 “수치심과 슬픔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단다. 그 위대한 미켈란젤로도 하물며 그렇게 옹송거리며 살았거늘.... 나같은 평범한 사람의 고뇌와 부끄러움 따위라니.... 묘하게 위로가 되는 대목......
예술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나리자는 세상에 한 점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어디를 가나 바라볼 가치가 있는 얼굴들은 많이 있다.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들어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 예술, 어떤 이에게는 그 자체가 목적인 예술. 그게 없었다면 단지 이 생명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알까. 그의 글도 내게 삶에 힘을 준 예술작품 중 하나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