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상형문자 b판시선 19
고명섭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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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시인 그랑그루아가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서술자, 혹은 호메로스 같은 시인일 수도 있다. 고명섭은 인류사의 파노라마를 타고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는 무대에 선 사회자 역할을 한다. 때로는 변사처럼 주인공의 목소리를 내고 때론 주인공 혹은 대척자나 주변인물들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시집을 읽었는데 역사극을 본 듯도 하고 심리와 상황 묘사가 탁월한 대하소설을 읽은 듯도 하며 새삼 짚어보는 철학자, 문학가, 역사 속 인물들을 가장 처절하고 부끄럽고 나약하고 비루한 밑바닥의 개인 서사로, 업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는 기분이 든다. 9000원밖에 안 되는 이 책은 마치 얇으나 깊은 마법서 같다.

 

고명섭 시는 모든 시가 서사시이다. 과거형 어미가 형식을 지켜 올리는 고대의 연극을 연상케 하기에 현대시적인, 시적인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탐색, 탐구의 여정을 호메로스 같은 고대 시인의 서술 형식을 빌려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시 속에는 플라톤이 등장하고(이데아, ) 비트겐슈타인의 서사가 있으며(헛간의 빛) 카프카가 담긴다(몰래 쓴 편지). 니체와 칸트를 아우른다. 그들 자신이 쓴 책도, 그 주장을 재해석한 책도, 소설로 그 삶을 재구성한 책도 세상에는 많지만 마치 그들이 되어 그 삶을 살아본 듯 그들의 몸이 되어 아픔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그들이 걸었던 흙길을 같이 걸으며 밤 늦은 시간 펜촉을 사각거리거나 열등감에 젖어 고개를 숙이는 이런 시는 없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많지만 그걸 통섭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자들은 더 많지만 그게 지금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고명섭이라는 한 평범한 기자는 어떻게 그런 경지에 갔을까.

이것을 뒤에 평론을 쓴 신형철은 ‘(고명섭은) 자신이 천착한 사상가와 예술가의 삶의 한 국면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을 본 것이었으리라.’ 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 는 이런 고명섭의 목적의식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무너진 집, 돌담 옆에 주둥이를 잃어버린 항아리

물기 없는 흙바닥의 아가미처럼 헐떡거리는 아가리

병조각 널린 길에서 발가벗고 뒹구는 몸뚱이

벌레 먹은 세월이 엉겨 썩어 들어갈 때

책의 문을 열면 굴뚝새 한 마리 푸드덕 날아갔다.

책 속으로 난 길은 하구의 강줄기같이 흩어지고

숲은 깊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 잎사귀를 뚫고 햇살 몇 가닥 들어와

큰 나무뿌리의 이끼에 맺힌 빗물의 잠을 깨웠다

이 숲 어디엔가 손길 닿지 않은 유적 묻혀 있지 않을까

...

 

책 속으로 들어가 책과 책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멋대로 난 풀잎의 혓바닥이 종아리를 스치고

사금파리들이 발가락에서 피를 핥았다

손전등을 들고 더듬어 보는 숲의 상형문자

입 꼭 다문 문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 고명섭 <상형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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