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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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은커녕 그냥 물리학도 아는 바 별로 없는 상태에서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읽었는데 물리학은 몰라도 저자가 잘 버무려 들려주는 인문학적 관점의 과학 이야기가 좋았다. 나처럼 중고등학교 수준의 과학지식만으로도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사람에게는 단지 과학이론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미학적이며 성찰적인 과학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칼 세이건에게 매료되었던 것은 그가 뛰어난 과학자가 아니라 뛰어난 문필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그렇게 이야기를 잘 들려주는, 우주와 인간과 인생과 과학을 잘 이어주는 이야기꾼들이 있다. 최재천, 이은희, 정재승, 그리고 김상욱. 특히 김상욱 교수는 음악과 미술, 문학에 조예가 깊다. 과학 이야기를 하면서 종종 언급하는 예술작품들 덕에 과학은 조금 말랑해지고 더욱 아름다워진다.

 

책 속에서 김상욱은 언어와 통신에서의 잉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DNA는 완벽을 위해 스스로 엄청난 잉여를 창출한다. 자연에서 잉여는 그 자체로 필수불가결한 것.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란 잉여를 누리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런 게 성찰이라는 거다. DNA 10% 정도만이 우리가 유전자라고 부르는 유의미한 존재일 뿐 나머지 어마어마한 부분이 잉여적 존재라는 건데 그 부분이 없으면 완벽DNA는 불가능하다지 않나. 객관적 사실을 놓고 우리 사회에 남는 부분이 갖는 존재가치를 성찰하는 자세는 얼마나 중요한가. 경제도 과학도 정치도 다 사람이 잘 살자고 하는 학문인 것을...

 

열역학 제2법칙도 그렇다. 엔트로피는 우주물리학의 운동량을 논하는 개념이지만 극히 유한한 인간이라는 존재론을 생각하게 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김상욱은 그것을 어차피 어질러지는 방구석에 비유하기도 했다. 움직임이 없으면 엔트로피가 작은 것이고 엔트로피가 극대화되어 움직임이 없게 되는 것이 곧 죽음의 상태이다. 그렇게 우리의 목숨은 물리학적 원칙에 따라 생성되고 사라진다.

 

이 서평을 쓰는 지금은 이 책을 읽은 지 꽤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대부분의 독후감을 오래 지나 쓰는 편이다). 지금은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를 읽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 전에 정리해놓은 내용들이 복습을 하듯 익숙하게 읽힌다. 그래, 여러 번 읽은 내용은 아무래도 머리에 남겠지... 유시민 작가 덕에 과학 공부 좀 해보련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무엇으로 시작할지 고민이 된다면 김상욱의 작은 책들이 좋다. 좀 더 미학적인 <울림과 떨림>도 좋다. 그렇다고 이 책들이 쉽게 읽히는 책이란 뜻은 아니다.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런가보다, 하고 읽는 거다. 특히 양자역학 이야기는 그 어느 책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자들도 입을 모아 이것은 이해할 영역이 아니라지 않는가. 그런 것들은 넘기면서 김상욱의 책들을 읽고 나중에 좀 두툼한 책을 읽으면 나처럼 반복학습의 효과로 그래도 과학상식 좀 아는 인문학도라는 착각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한다.

요즘 환생이나 평행이론, 회귀, 시간의 반복 등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끈다. 이런 과학책을 읽다가 보면 드넓은 우주의 무수히 많은 태양계나 블랙홀, 특수상대성 이론 따위들이 우리를 블랙홀 너머의 세계나 평행우주로 데려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작가들도 그런 상상을 하나 보다. 다만 김상욱은 말한다, 상대성이론은 시간이 관측자에 따라 다른 속도로 진행한다고 주장하지만 속도만 다를 뿐 진행 방향은 정해져 있다는 게 중요하다. 시간은 절대 되짚어 돌아갈 수 없다고. 그래서 어쨌거나 우리는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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