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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이 시대를 (정신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으리라. 작가의 마음을 이렇게 추정해 보는 이유는, 내가 그런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지난 1년 반 남짓의 시간은 ‘정신병의 시간’ 같이 느껴지는 때였다. 개인사와 겹쳐, 20대를 제외하고 내 생에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닌가 싶을 만큼 어둡다. 문제는, 이런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직장 동료들 중 정치에 관심도 별로 없고 오히려 약간 보수적인 사람들조차 답답함을 호소한다. 비교적 ‘강남좌파’에 가까운 나의 형제들이 모이면 울분과 성토의 술자리가 펼쳐진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숨을 쉬거나 술을 마시거나 욕을 하거나 자다 깨어 뉴스를 검색하거나 힘겹게 싸움을 이어나가는 마이너 언론에 후원금을 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자조하고 있을 때, 조선희 씨는 ‘소설이라도 써야겠다, 이 시대의 군상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주 근사한 시대물이 나왔다고 본다, 나는. 훗날 이 소설은 비장한 해방 국면, 전쟁, 4.3., 광주 등의 역사를 기록한 시대물 못지 않게 ‘2023년’을 생생히 기록한 소설로 남을 것이다.
시대는 ‘이것이 시대이다’라고 인식한 사람에게만 시대가 된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세월’일 뿐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내가 분명히 엄혹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었다. 인지이고 각성이고 감지였다, 나에게 시대는. 그리고 그 영향은 이후의 삶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금 2023년은 또한 어떤 의미에서 이후 시대를 꽉 쥐고 흔들 중차대한 시기일 수 있다. 살기 바빠 그저 세월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 대신 민감하게 그걸 느끼는 사람들은 마치 말미잘의 촉수 속에서 이 치욕과 따가움, 아니 견뎌내지 못하면 결국 잡아먹히고 말지도 모를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에게서 그런 동지의식을 읽는다.
혐오 팬데믹이 만들어 내는 ‘민주화된 지옥’
진보적 지식인이자 중산층의 퇴직한 60대 부부, 그리고 그들의 2, 30대 자녀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사는 일에 걱정이 없으면서 무슨 타령을 하느냐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는 각각의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소설 속 가정처럼 레즈비언을 선언한 딸, 윤석열을 찍은 아들을 둘 만큼 극단적(?)이지 않을 뿐이다. 비슷한 연배의 가정마다 어떤 집은 경제적 문제, 어떤 집은 부부간의 갈등, 어떤 집은 질병과의 투쟁, 어떤 집은 다른 가족과의 신경전 등의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집이든 젊은 자녀가 있다면 그들의 취업이나 결혼, 육아 등의 문제가 장년층 부부의 가장 큰 이슈일 것이다. 이것이 개인사와 더불어 정치적으로 얽힌다면, 이것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소설 속 영한처럼 사회학적으로 고찰할 문제가 돼버린다.
더 나아가 나는 젊은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의 정치 사회적 세계관의 간극은 이 사회의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비록 중학생이긴 하지만 30년 넘게 남학생들을 가르쳐 오면서 10대 남자들의 의식구조가 2, 30대 남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10여 년 전에는 그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주로 여기고 폭력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도의 모습(물론 부정적인 면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젊은 남자들이 갖고 있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순수하고 정의로운 에너지와, 그것들이 뿜는 선한 영향력을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에 그쳤다면 언젠가부터 이들의 가치관은 정교해지고 구조화, 논리화되어 간다. 이제는 그야말로 ‘세계관’이라 부를 만하게 견고해져 논리적으로 무너뜨리기 힘들다. 노무현, 문재인을 언급하지 않아도 반중국 정서, 여성의 군입대론, 가사노동의 분담 등에서도 그들의 논리는 그야말로 ‘논리’를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단지 일베의 영향으로 치부하고 부도덕하다고 한숨만 쉬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남녀갈등을 말하지만 어찌 보면 이제 겨우 시작일지 모른다. 나는 출생률이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에 부동산이나 육아, 교육비뿐 아니라 남녀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젊은 남자들은 내 여친도 페미가 아닐까 두려워하고 젊은 여성들은 내 남친에게서 일베나 스토커의 그림자가 숨어있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연애를 하다가도 몇 번 그런 낌새들을 느끼거나 경험하면 결혼은 더더욱 하기 싫은 일이 된다.
소설을 읽고 서평을 쓰려 했는데 어쩌다 시대론을 쓰고 있는 걸까. 하여간 이 소설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소설 속 ‘아버지’는 시대론을 쓰면서 이 시대를 극복하려 애쓰고 작가인 조선희 씨는 이렇게 소설을 쓰면서 이 시대를 살아내려 애쓴다. 내 아이들의 취업과 맞물려 우울증에 근접해 가던 나는 시를 쓰고 외국어를 공부하며 어떻게든 견뎌내려 애쓰다가 한두 달 전부터 처방받은 혈압약을 먹으면서 불면을 조금 극복하고 있다. 의사의 말로는 내가 먹는 심장혈압약에 긴장을 조금 완화시켜 주는 기능이 있다 한다. 그래서인지 극단적인 불안감이 줄고 자다 깨도 도로 잘 잔다. 그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어떤 ‘방법’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들이 어딘가에는 있다. 그게 뭔지 적극적으로 찾아보자. 재미난 팟캐스트를 찾아 들어도 보고, 새로 운동도 시작해 보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도 보고, 피켓도 들어 보자. 뭐 이런 거 저런 것들을 하다 보면 좋은 세상도 올 것이다. 3년 후일 수도 있고 얼마 안 있어서일 수도 있다. 소설 속 말을 빌어, ‘그 안에 전쟁만 나지 않는다면.’ 이 우울의 시대를 뚫고 지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일단 조선희의 <그래도 봄>을 읽을 것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