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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 좋아서 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
곽미성 지음 / 어떤책 / 2023년 6월
평점 :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쓴 글, 특히 삶의 주변을 담은 에세이 글은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작가 이름 기억하는 일을 잘 못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책은 제목보다도 작가 이름으로 기억했다. “뭐였지, 제목이? 이탈리아어 배우는 이야기, 곽미성이, 쓴...” 이렇게.
한창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와중에 신문인지 주간지인지 신간 소개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어머! 영어가 아닌 외국어 공부를, 혹시 스페인어?... 는 아니고 이탈리아어란다. 스페인어와 친척어인데? 하여간 외국어 공부 이야기를 담았다 하니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살고 직업도 가진 여성이 뜬금없이 이탈리아어를 공부한단다. 그것도 단지 재미로(즐거움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탈출이자 도피였다. 가장 가볍고 자유로운 해방의 외국어.. 이탈리아어는 천천히 나를 해방시키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확장되고 있었다..라고 작가는 썼다) 즉, 필요나 삶의 절실성 때문이 아니란다. 그의 책에는 이탈리아어를 공유하는 과정이 자세히 담겨있기도 하지만 프랑스에서 살게 된 삶의 궤적도 간간이 등장한다. 내가 알고 싶은 이야기들이 다 들어 있다. 한때 프랑스어를 배웠고 그걸 다시 공부하고 싶지만 쓸모에서 실용성이 떨어지는 프랑스어 대신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는 나. 그러면서도 사실 딱히 어디 쓰려고라고보다 그냥 재미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나. 뭐 운이 좋다면 스페인 계열 어느 나라 사람들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혹은 어린이책을 번역하는 일에 스페인어와 영어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나이도 너무 많고 실력도 일천해 그냥 별 의미 없는 목표일 뿐인 나. 오히려 우울과 불안을 달래는 용도로 밤마다 침대에 엎드려 혼자 스페인어 동사변화를 외우는 나, 그럼에도 끊임없이 여기 아닌 다른 곳과 삶을 꿈꾸는 나이며 어쩌면 유럽 사대주의자인지도 모를 나에게 곽미성의 책은 내가 이루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한 꿈을 충족시킨다.
용감하게 낯선 나라에 가서 공부를 했단다. 어쨌든 지금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게다가 이제는 재미 삼아 제4의 언어를 공부해 본다. 이탈리아를 배우러 다니는 동안 파리 좌안과 우안을 넘나들고 거리를 활보한단다. 글 맨 마지막에 작가는 ‘나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나의 세계는 계속 커지고 있다’ 라고 쓴다. 그래,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가 생기는 거라고 누가 그랬다. 인정.
여행기에 허기와 추위, 불안이 없고 반려동물 키우는 이야기 속에 냄새와 털날림이 없어 좋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 여행지로서는 빵점에 가까웠던 파리라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모두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파리를 편안히 드나든다. 곽미성에 감정이입하여 셰익스피어 컴퍼니 서점도 지나치고 언젠가 오들오들 떨며 올랐던 노트르담 광장을 거쳐 이탈리아어를(혹은 스페인어를) 배우러 가 본다. 나에게는 그림책의 도시로 기억되는 볼로냐로 어학 체험을 떠나는 상상도 해본다.
이미 다녀온 곳들이지만 스페인어가 능숙해진다면, 그리고 훗날 퇴직 후 시간이 많아진다면 다시 쿠바나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 마드리드의 큰 서점에 가서 어린이 책을 많이 많이 사오는 상상을 해본다. 생각보다 스페인어권 책이 많이 번역되지 않은 우리 서점 시장을 생각해서, 일단 내가 번역을 해본 뒤, 정말 좋은 책은 한국어 번역을 추진해 보는 상상도 해본다. 이 모두는 꿈이지만 이루어지든 아니든 상관은 없다. 나는 그저 그 꿈꾸는 시간을 즐길 뿐이다. 나의 꿈놀이에 곽미성은 물을 부어주었다. 글 쓰는 동안 그도 즐거웠겠지? 읽으면서 나도 즐거웠다. 만약 내가 나만의 스페인어 공부 이야기책을 쓰거나 뭔가를 번역하거나, 번역을 위해 또다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어떤 나라에 여행을 간다면 나의 그 모든 행보가 누군가에게 또 즐거움을 줄 수도 있겠지? 삶이 행복한가 아닌가는 지금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가 아닌가가 기준이 아니다. 앞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기대가 우리를 살게 한다. 괜히 자꾸 ‘희망을 가지라’라고 말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하여간, 당분간은, 덕분에, 이로써, 행복하련다.